오늘의 저편 <83>
오늘의 저편 <83>
  • 경남일보
  • 승인 2012.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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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체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빚쟁이 뒤를 숨어서 따라가는 사람처럼 형식은 소리를 죽인 채 집으로 향하는 정자 뒤를 밟고 있었다.

‘설마 민숙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자전거 소리가 앞뒤 없이 작아지고 있음을 알아차린 정자는 입언저리를 부르르 떨었다.

‘…무어라고 불러야 하지? 각시? 이봐요? 있잖아요?’

형식은 이대로 계속 숨을 죽이고 있을 수만은 없겠다고 판단했다. 말을 걸긴 걸어야 하겠는데 서먹하고 불편한 마음이 앞서고 있어서 애꿎은 입술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기어이 뒤로 몸을 살그머니 돌리던 정자는 신랑과 눈이 정확하게 딱 마주치고 말았다.

“어머! 엇!”

정자와 형식은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하여 놀랐다.

얼굴이 새빨개진 정자가 먼저 몸을 재빨리 앞으로 돌려 숫제 달아나듯 걸음을 재촉했다.

형식은 목을 옆으로 돌려 허공을 보았다. 무어라고 말을 걸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돌부리에 발끝이 걸린 정자는 몸의 중심을 잡을 사이로 없이 그냥 넘어지고 말았다. 물을 흠뻑 뒤집어쓴 정자는 당황히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물동이부터 챙겼다. 한쪽이 움푹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곤 울상으로 돌변했다.

‘시집온 지 사흘도 안 된 새색시가 사고부터 쳤으니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

두리번거리며 돌을 찾았다.

형식은 좀 어색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찌그러진 것을 펴려고?’

정자가 돌을 하나 집어 드는 것을 보면서 더욱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정자는 움푹 밀려들어간 부분의 안을 돌로 통통 치기 시작했다. 친정어머니도 그릇이 우그러지거나 하면 돌이나 망치로 쳐서 바로 펴곤 했다.

‘도와주겠지?’

다가오는 신랑을 느끼면서 정자는 성급히 희망을 품었다.

‘이리 줘 봐요. 어디 다친 데 없소? 물만 새지 않으면 되지 않겠소.’

이런저런 말들을 하려고 잔뜩 벼르기만 하던 형식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냥 각시 곁을 지나가 버렸다.

“여보세요?”

급기야 정자는 신랑의 등에다 대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무심결에 소리를 지르고 난 다음에야 스스로에게 후회했다. 도대체 너무 무심한 신랑한테 엮어댈 말이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고 있어서. 아니, 어쩌다 할 말이 생각난다 하더라도 절대로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형식은 걸음을 멈추었다. 뒤로 목을 돌릴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정자의 목소리가 흡사 비명처럼 들렸던 탓일까? 각시를 향한 동정심 같은 것이 인색하게나마 꿈틀거리고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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