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56>
오늘의 저편 <56>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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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가지 마. 지금 가면 너도 위험해.”

 민숙은 그의 옷자락을 딱 붙잡았다.

 “철주야! 영식아!”

 그녀의 손을 떼어내며 형식은 점원들의 이름만 불러댔다.

 ‘제발, 살아 있어. 죽으면 안 돼.’

 숫제 주문을 외며 달렸다.  

 “가면 너도 맞아죽어. 각시한테로 돌아가.” 

 저만치 멀어져가는 그의 등에다 대고 민숙은 공허하게 중얼거렸다.

 ‘그럴 바엔 장가는 왜 간 거야?’

 자기 각시 생각은 모기눈물만큼도 하지 않는 형식을 보면서 벌써부터 정자의 아픔이 느껴지는 건 오지랖이 넓기 때문일까.

 ‘지금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남 걱정하니?’

 형식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 민숙은 맥없이 코웃음을 쳤다.

 형식의 처가인 정자의 집에서는 집안어른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정자 모친인 시흥댁은 사위가 사라져 버린 사실을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전전 긍긍하고 있었다.

 “올 놈 같았으면 달아나지도 않았어. 이 놈의 자식, 어디서 감히 내 딸한테 소박을 놔? 걸리기만 해 봐. 내 그냥 다리몽둥이를…….”

 성질이 좀 급한 정자 부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폈다 하며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 딸의 앞날에 대한 염려가 분노로 전이되어 화가 불뚝불뚝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소박은 무슨? 첫날밤은 치렀다는데 자꾸 그러세요?”

 시흥댁은 남편의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를 죽이라고 눈치를 주며 눈꺼풀을 있는 대로 찢어발겼다. 생억지를 부려서라도 딸이 합방행사는 무사히 치렀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었다.   

 “첫날밤을 치룬 놈이 왜 혼자 달아나?”

 부친은 모처럼 빼입은 새하얀 모시저고리의 소매를 둥둥 걷어 부치며 당장이라도 새신랑 집으로 달려갈 태세였다. 

 아침 일찍 흐뭇한 마음으로 딸의 신방을 흘깃거리던 시흥댁은 댓돌 위에 나란히 앉아 있어야 할 사위의 신발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시흥댁은 한사코 눈을 껌벅였다. 잠기운이 남아 있어 침침한 눈 속으로 얌전하게 앉아 있는 딸의 코고무신은 잘도 들어왔다.  

 ‘뒤를 보러 갔겠지?’

 측간부터 염탐하러 갔다가 그곳에 없음을 확인하면서부터 애간장이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불쌍한 것이 밤새 족두리를 쓴 채 앉아있는 거야?’

 기어이 딸의 방문을 소리 없이 열곤 숫제 방안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족두리가 벗겨져 있는 것을 보곤 앞뒤 가리지 않고 새신랑이 벗겨 주었느냐고 물었다. 딸이 말없이 목을 끄덕이자 ‘그럼 되었다!’ 라고 하곤 도로 방을 나왔다.

 ‘되긴 뭐가 되어요?’

 정자는 그런 어머니가 여간 야속한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아버지처럼 화를 내고 신랑 집에 따지고 하면 그 사람이 겁을 집어먹고 돌아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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