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55]금산 성치산 12폭포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55]금산 성치산 12폭포길
  • 경남일보
  • 승인 2024.07.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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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듯 없는 듯…낮고 작은 폭포들의 울림
 
일주문폭포 위에서 쉬고 있는 탐방객들
 

우리나라 3대 12폭포로 널리 알려진 곳이 동해시 두타산 12폭포, 포항시 내연산 12폭포, 그리고 충남 금산군에 있는 성치산 12폭포다. 필자는 두타산과 내연산을 몇 년 전에 다녀왔다. 두타산 12폭포가 신선이 살만한 무릉도원과 같은 곳이었다면 내연산 12폭포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처럼 예술미를 갖춘 폭포로 기억하고 있다.

진주바우산악회에서 성치산 12폭포와 성봉 산행을 떠난다는 말을 듣고,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어 했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바우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성치산 12폭포 트레킹(도보 여행)을 떠났다. 성치산 12폭포는 필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하는 기대감을 머금고 버스에 올랐다.

아침 일찍 버스에 오르자 버스 안은 온통 구린내로 가득했다. 회원 한 사람이 개똥을 밟은 것도 모르고 탑승을 해서 개똥 냄새가 진동했던 것이다. 버스 바닥에 소주를 뿌려 깨끗이 닦은 뒤 냄새의 진원지인 회원의 등산화도 알코올로 깨끗이 소독을 하고 나니까 버스 안의 공기가 상쾌해졌다. 아침에 개똥 냄새를 만끽했으니 오늘 하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진주에서 2시간 30분 정도 걸려 금산 성치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성치산주차장-그늘막휴게소-12폭포민박-1~12폭포-성봉·성치산 갈림길-성봉-신동봉-12폭포·신동 갈림길-성치산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하는 10㎞ 코스를 산행하기로 했다. 여름 땡볕이 산행 시작점부터 12폭포 민박집까지 이어진 시멘트 길을 후끈하게 달구어 놓았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벌써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제5폭포인 죽포동천폭포.

 

◇푸른 대나무 우거진 수목이 비친 '죽포동천'

물뱀인 무자치가 많아 무자치계곡이라고 불린다는 12폭포 계곡, 제1폭포와 2폭포인 장군폭포, 3폭포인 일주문폭포, 4폭포인 삼단폭포까지 왔는데도 폭포에 대한 안내 표지판만 있고 폭포는 보이질 않았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수량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높이가 1~2미터밖에 안 되는 야트막한 폭포들이라서 필자의 눈에는 폭포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제5폭포인 죽포동천폭포에 이르자 마침내 폭포다운 폭포를 만날 수 있었다. 폭포 높이도 꽤 높고 생김새 또한 아주 멋진 폭포였다. 많은 사람이 폭포수 아래 있는 너럭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죽포동천폭포 왼쪽을 돌아 폭포 상단에 올라가자 아주 넓은 너럭바위가 계곡 바닥을 이루고 있었다. 계곡 바닥에 앉아 많은 사람이 족욕을 하면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런데 폭포 상단 쪽 바닥에 새겨 놓은 ‘竹浦洞天’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푸른 대나무처럼 우거진 수목이 맑은 물에 비치어 마치 그 수면이 대나무숲처럼 보여 ‘죽포’라고 했고, 맑고 푸른 골짜기가 신선이 살만한 별천지와 같은 곳인지라 ‘동천’이라 이름을 붙여 이 폭포를 죽포동천폭포라 불렀다고 한다.


6폭포인 구지소유천폭포부터 12폭포인 산학폭포까지도 폭포가 비스듬히 누워있거나 그다지 높지 않고 수량이 적어서 다소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마지막 폭포인 산학폭포 위쪽 너럭바위에 앉아 쉬면서 무자치계곡을 왜 굳이 ‘성치산 12폭포’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두타산과 내연산 폭포가 그 풍치를 자랑하며 스스로 신선이 살만한 곳이라고 뽐내고 있었던 것에 비해 성치산 12폭포는 그들 폭포와는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제 자리를 지키면서 낮고 맑은 소리로 세상을 열어가는 사람과 일상에 찌든 사람들에게 시원한 쉼터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성치산 12폭포야말로 친서민적이면서 많은 사람에게 힐링과 휴식을 건네주는 훌륭한 휴양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풍경으로 사람들의 눈을 호강시켜 주는 폭포보다 일상에 지친 많은 사람에게 휴식과 힐링을 제공해 주는 낮고 작은 폭포들의 가치를 인정받아 ‘성치산 12폭포’란 이름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치산 둘레길.

 

◇산길 걷은 탐방객의 쉼터가 되는 활엽수 그늘

낮고 맑은 소리를 내는 폭포수를 따라 나 있는 성치산 12폭포 둘레길엔 갓 피어난 주황빛 털나리가 수줍게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계곡물이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는 동안 박새, 꾀꼬리, 밀화부리 노랫소리가 귀 호강을 시켜 주곤 했다. 길섶에 선 생강나무와 떡갈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들이 서로의 잎으로 그늘을 드리우며 산길을 걷는 탐방객들에게 끈적대는 더위를 식혀 주었다.

12폭포의 물길이 끊긴 능선부터는 길이 몹시 가팔랐다. 미끄러운 마사토 길이라 길섶에 선 나무들의 도움을 받아야 올라갈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성봉에 닿아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은 뒤, 다시 신동봉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정상인 성봉에 오르는 길이 너무 가팔라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서둘러야 승차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성봉에서 신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지나 남일면 쪽으로 바라보니 건너편 산기슭이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관광농원, 휴양림, 캠핑장, 리조트 등 심천웰빙센터를 조성 중이었다. 골짜기를 타고 올라온 바람을 쐬며 걷는 동안 개발과 생태 보전에 대한 생각을 잠깐 했다. 떡갈나무들이 호위하고 있는 능선은, 바람은 받아들이고 햇볕은 막아주는 곳이어서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와 닿은 12폭포, 처음 12폭포를 봤을 때의 실망과는 달리 폭포들이 마냥 고맙게 느껴졌다. 성치산 12폭포들이 작은 소리로 탐방객들에게 쉼과 힐링을 건네주고, 낮은 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헹궈 주는 것처럼 낮고 작은 존재들이 정녕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그들이 세상의 주인임을 새삼 깨달은 하루였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성치산 능선길에서 내려다본 심천웨빙타운.
십이폭포 들머리 12폭포민박집.
성봉 표지석.
십이폭포 들머리에 있는 그늘막휴게소.
징검다리를 건너는 탐방객들.
죽포동천폭포 상단에 새겨놓은 글씨.
바닥을 드러낸 계곡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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