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팥빙수
[경일춘추]팥빙수
  • 경남일보
  • 승인 2024.07.0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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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국 소소책방 대표
조경국 소소책방 대표


팥빙수를 사랑한다. 어느 정도냐면, 몇 년 전 여름엔 팥빙수 100그릇을 먹고 지인들에게 인증(?)했던 적도 있다. 여름 내내 매일 팥빙수 한 그릇을 먹었던 셈이다. 지금이야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자주 팥빙수를 먹으러 간다. 가까운 이를 만나면 “팥빙수나 한 그릇 할까?” 묻는 것이 일상이다. 찹쌀떡, 콩고물, 젤리, 연유 등등 고명을 올린 것도 좋아하지만 역시 팥빙수는 팥과 얼음만으로 먼저 승부를 걸어야 한다. 알이 실한 국산팥을 직접 고아내는 가게라면 그걸로 족하다. 기본이 갖춰지면 나머지는 장식.

팥빙수를 먹으러 가는 곳은 거의 정해져 있다. 집에서 가까운 하대동팥빙수, 일터에서 멀지 않은 커피빅스, 평거동 쪽에 갈 일이 있다면 올디스. 아마 이 세 곳은 팥빙수를 좋아하는 진주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거나 가보았을 테다. 다른 동네에 가서도 여름엔 팥빙수 맛집부터 검색한다.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놀러가는 남해 지족에는 팥파이스가 있고, 요즘 일 때문에 자주 가는 밀양에는 강지네옛날팥빙수가 맛있다. 책방 옆집 과일주스가게 이거디에서는 신선한 과일빙수를 팔았다.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해서 자주 찾았다. 맛집으로 이름이 났었는데 안타깝게도 문을 닫고 말았다. 불경기를 견디지 못했다. 비싼 과일을 원재료로 쓰니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여름엔 시원한 콩국수나 밀면을 먹고 팥빙수까지 곁들여야 정석이다. 이 조합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은 팥과 콩이 들어간 음식과 면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것에서 비롯된 듯하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은 ‘빙수당’이라 불릴 정도로 빙수 마니아였다고. 그가 남긴 ‘빙수’라는 수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경성 안에서 조선 사람의 빙숫집 치고 제일 잘 갈아주는 집은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종로 광충교 옆에 있는 환대상점이라는 조그만 빙수 점이다. 얼음을 곱게 갈고 딸깃물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도 분명히 이 집이 제일이다. 안국동 네거리 문신당 서점 위층에 있는 집도 딸깃물을 아끼지 않지만, 그 집은 얼음이 곱게 갈리지 않는다. 별궁 모퉁이의 백진당 위층도 좌석이 깨끗하긴 하나 얼음이 곱기로는 이 집을 따르지 못한다.”

이 글에서 눈길이 갔던 것은 경성 최고의 빙숫집 환대상점보다 ‘문신당 서점 위층 집’이라는 대목이었다. 서점 위에 빙숫집이라니! 이것은 환상적인 조합이 아닌가. 헌책방을 운영하는 처지인지라 만약 책방 위층이 진주 제일의 팥빙수 가게라면 책방은 비워두고 팥빙수 집에서 노닥거렸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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