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6월 6일은 반민특위 강제해산일
[경일포럼]6월 6일은 반민특위 강제해산일
  • 경남일보
  • 승인 2024.06.30 14: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친일 청산문제에 대해서 그동안 법도 만들고, 특위도 구성해 할만큼은 했을테니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때껏 한 번도 친일 청산을 하지 못했다. 특위가 있긴 했지만 친일파가 대다수 간부인 경찰은 반민특위를 해체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6월 공세’를 전개했다. 반공궐기대회와 반민특위 본부 습격, 국회 프락치 사건, 김구 암살 등이 연이어 진행됐다. 다행히 1954년에 현충일로 제정된 6월 6일을 반민특위 강제해산일로 기억하는 분들이 있다. 지난달 6일, 반민특위 본부가 있었던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맞은편에 모여 항일현장 답사를 하고, 중부경찰서 정문에서 반민특위 강제해산 사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해방 75년 만에 비로소 가진 ‘기억식’ 행사였다.

1949년 6월 3일, 국민계몽대 주관으로 관제 데모인 반공궐기대회가 열렸다. 지금 생각하면 반공도 애국이고, 친일청산도 애국인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반공이 친일 보호의 앞잡이였다. 이 집회에 참석했던 300여 명의 군중들이 반민특위 사무실에 몰려가 ‘반민특위 내 공산당을 숙청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난동을 부렸다. 6월 4일, 서울시경 사찰과장 최운하와 종로서 사찰주임 조응선이 반민특경대에 체포되었다. 일제 고등계 형사 출신인 최운하와 조응선은 반민특위 위협 목적의 대중 시위를 조직한 것이 드러났던 것이다. 다음날인 6월 5일, 서울시 경찰국 사찰과 소속의 경찰관 440명이 반민특위 간부 교체, 반민특경대 해산, 경찰의 신분보장 등을 요구하며 집단사표를 제출했다. 6월 6일, 장경근 내무차관과 김태선 서울시 경찰국장의 명령으로 오전 8시 반, 윤기병 중부경찰서장과 무장경찰 80여 명이 남대문로에 있는 반민특위 청사를 습격했다. 윤기병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경찰부 고등경찰과 출신으로 일제 치하에서 경부의 지위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기마 경찰들이 반민특위 건물 주변을 에워쌌다. 윤기병은 장탄한 권총을 휘두르면서 소리 질렀다. “여기 있는 놈들 모조리 끌고 가라!” 총을 든 경찰관들은 “여기 있는 놈들 대부분이 빨갱이들이야. 여긴 빨갱이 소굴이라구”라면서 무력을 행사하여 반민특경대를 무장 해제시키고, 사무실에 보관된 친일파 조사 서류, 통신기구, 호신용 무기 등을 모조리 불태웠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김상덕 위원장이 호통을 쳤다. “이놈들아!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국법을 수행 중인 국가 요원들에게 이러고도 너희들이 무사할 것 같으냐?” 윤기병이 이죽거렸다. “최운하 과장과 조응선 주임을 진작 내주셨으면 이렇게까지 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내놓으시면 조용히 물러나겠습니다.” 출범 여덟 달 만에 반민특위는 조사기능이 마비됐다.

반민특위 습격이 있은 지 사흘 후 이 사건으로 국민의 비난이 거세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반민특경대 해산은 대통령인 내가 직접 경찰에 지시한 것”이라고 밝히며 “반민특위의 (친일경찰에 대한) 체포 위협은 국립경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국회는 6월 9일, 이승만 대통령에게 즉각 책임자 처벌과 반민특위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6월 11일 반민특위 활동으로 민심이 소요되어 부득이하게 특경대를 해산했다는 담화를 발표하고, 국회 요구를 묵살했다. 이 묵살과 좌절로 인해 지금까지 친일청산을 못하게 되었다. 습격 사건을 주도한 서울시 경찰국장 김태선은 경무부 수사국장, 수도경찰청장, 내무부 치안국장 등 경찰 요직을 거치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행동대장 노릇을 하다가 2년 후 이기붕 후임으로 제5~6대 서울시장을 4년 11개월 동안 했다. 관선 시장 가운데 재임 기간이 가장 길었다. 윤기병은 1953년에 제6대 서울시 경찰국장에 취임했다. 6월 6일의 습격은 사실상의 반민특위 해체였고, 친일청산의 포기이자 친일파의 승리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정만석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