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가치 있는 시간이란
[경일춘추]가치 있는 시간이란
  • 경남일보
  • 승인 2024.06.3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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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형 진주 예하초등학교 교사
권태형 진주 예하초등학교 교사


저녁 식사가 끝나고 싱크대에 그릇이 쌓여 있다. 음악이나 영상을 켜고 수세미에 세제를 묻힌다. 그릇을 닦는다. 때로는 콧노래를 부르며, 때로는 재미있는 장면에 웃으며 뽀득뽀득 닦는다. 최소 10분에서 최대 20분 정도는 설거지에 시간을 쓴다. 주위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식기세척기를 왜 안 사냐고 종종 묻는다. 그때마다 대답을 한다. 나만의 시간이 있어서 좋다고.

식기세척기를 놓을 공간도 있고, 살 돈도 있지만 사지 않는다. 설거지거리가 많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말하는 대로 나만의 시간이 있어서 좋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물론 식기세척기가 있다면 설거지할 시간에 피로를 풀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보냈던 나만의 시간은 사라질 것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보며 쓸데없이 힘을 뺀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기 때문에 하는 말일 것이다. 내가 보내는 설거지 시간이 쓸데없이 힘을 빼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시간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온전히 들을 수 있고, 좋아하는 영상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시간이기에 가치 있는 시간이다. 시간의 가치는 이처럼 상대적이다. 나에게는 가치 있는 시간이 다른 사람에게는 가치 없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시간들도 매한가지이다. 누군가에게는 쓸데없고 무의미한 시간들일 수 있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 있다. 학교교육을 단순히 교사 중심으로 지식 전달, 학력 향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눈으로는 학생과 함께 만들어 가는 교육과정, 학생의 삶과 함께 하는 배움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은 무의미해보일 수도 있다.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느리고 힘든 길을 가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학교는 느리고 힘들 수 있지만 가치 있는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행복나눔학교로서 학생의 행복을 가치의 중심에 두고 학생들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나아간다. 설거지 시간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너무 많은 설거지거리가 있거나 기름이 잔뜩 묻어 있을 때면 힘이 들기도 한다. 설거지 시간만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시간이 때때로 나를 힘들게 하거나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이 그 가치에 대해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의미 있는 것으로 남을 것이라는 믿음을 되새긴다. 또다시 찾아오는 물음표, 누구에게는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는 일에 나는 내 믿음에 답하며 또 한 발자국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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