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저녁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 울먹이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만 귀에 맴돌았다. 그래서 뒷날 창원소재 병무청으로 달려가 병무 담당자를 만나 아주머니의 딱한 사정 이야기를 설명했더니 한번 만나보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아주머니에게 연락해 드렸다. 그 아주머니와 통화 이후 17년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었는데 2014년 12월초 경남도청 감사관실 근무하는 조현영씨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남해 거주 어떤 할머니께서 찾는다며 꼭 뵙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도청 민원실에서 처음 그 할머니를 만났다.
17년 만의 첫 만남, 할머니는 남해에서 버스를 3번 갈아타고 도청에 왔다며 당시 55세 아주머니였는데 이제 할머니(함춘화·현 75세)가 된 셈이다. 목소리도 예전과 비슷하며 17년 전 전화 통화내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찾은 이유인즉, 17년 전 당시 저의 작은 도움으로 아들이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고 고마운 마음을 죽기 전에 꼭 전하고 싶었다며 울먹였다. 그리곤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감사의 표시로 내밀었다. 열어 보았더니 마른 생선 2마리였다. 불편한 몸으로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이곳까지 전하러 오신 그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고 저의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지난해 6월 이곳 고향 산청에 부군수로 부임한 이후에도 할머니와 유사한 생활이 어려운 분을 또 만나게 됐다. 지난해 연말 남루한 옷차림에 몸이 부자연스러운 70대 할아버지가 사무실에 찾아오셨는데, 본인은 뇌병변 장애인이고 딸도 장애인, 부인 등 3명이 누추한 집에 재산도 없이 매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며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담당공무원을 할아버지 댁에 방문케 해 애로사항 상담과 가정실태 등을 조사해 심의한 결과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돼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는 모습을 볼 때 공직자의 보람을 느낀다.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마른 생선 2마리’의 생애 최고의 선물을 보내주신 할머니, 그 고마운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 아직도 냉장고에 생선 2마리를 보관하고 있다. 요즘 건강은 어떠하신지,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 17년간이나 고이 간직한 그 고마운 선물, 평생 간직하고 살아가겠습니다.”
민정식(산청부군수)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