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겹 한겹
보이지 않을수록
-박서희(창원), ‘할머니’
나날이 늙어가는 자신을 견디는 일만큼 큰 슬픔이 또 있을까.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의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물리적 변화 현상 즉, 죽음에 이르는 병이나 죽음의 경지 같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생물학적 신체 변화로 움직임이 둔화한 몸, 듣지 못하는 슬픔, 말하지 못하는 슬픔 모두 그러할 것이다. 갈수록 시력이 쇠하는 할머니에게 매화는 경계가 뭉그러지고 대상이 흐릿하여 아지랑이 가득한 원거리 사물이거나 먼 과거의 한 때 같이 보인다.
그러므로 할머니에게는 “더 아름다운 봄날의 수묵담채화”여서 비의적이다. 이제 갓 핀 꽃과 늙은 할머니 그리고 성장하는 어린이라는 의미를 함의한 색깔이면서 동시에 젊고 화사함을 상징하는 분홍색과 한없이 채도가 낮은 수묵담채의 극적 대비가 할머니의 흐릿한 눈과 함께하면서 슬픔의 정조를 극대화한다. 어쩌면 늙은 할머니의 슬픔보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숨은 화자의 슬픔이 더 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이른 봄, 매화를 보는 일은 슬픔인 줄도 모르고 슬퍼지는 일과 같다. 시인·디카시 주간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