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 이학박사·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
진주교방음식을 연구하면서 필연적으로 진주의 역사와 철학, 문화 등 인문학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진주교방음식의 당위성을 뒷받침한 것은 인문학이었다. 덕분에 진주교방음식은 궁중음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실에 근거한 스토리텔링이 구축됐다. ‘진주화반’만 해도, 수천 년 전 동북아시아를 석권했던 유학의 뿌리가 존재하고, 재료에 깃든 진주 정신과 지리·경제·정치적 요건들이 합해져 진주만의 독창적 문화로 탄생했다.
진주는 인문학의 도시였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구한 것도 남명의 실천 유학이었다. 수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선비의 고장이다. 선비는 단순히 벼슬을 했다고 얻어지는 명칭이 아니다. 세속을 멀리하고 학문을 탐구하며 사람의 도리인 인의예지와 정의를 지켜 사회를 정화하는 역할을 했다.
근면절약과 솔선수범을 신조로 삼은 선비들이 모여 금란계를 맺은 촉석루, 서까래에는 김일손이 지은 ‘진양수계서(晉陽修序)’가 있다. ‘높으면 목사요 낮으면 문지기이며, 가난한 향교의 관리도 있다.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나이를 논하지 않는다.’
이것이 선비들이 지향했던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 소통, 공감 능력은 자연과학이 아닌 인문학 분야다.
우리는 지금 AI라는 4차 혁명의 시대에 직면해 있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누구나 개인 전화를 손에 들고 전 세계를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었다. 인터넷은 산업혁명에 이어 획기적인 변화였다.
AI 시대에는 편리성과 속도가 쟁점이다. 외국어를 몰라도 스마트폰이 자동으로 통·번역을 해주며 척척 알아서 청소하는 기계가 활약한다.
문제는 개발자의 인문학적 소양이다. 수많은 데이터를 취합해 만드는 AI에서 인문학이 결여된다면 인공지능은 엄청난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이미 AI가 생산하는 가짜뉴스가 전세계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요인이 되지 않았던가.
오픈AI의 책임자조차 AI 기술이 가져올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정부와 인문학자 등 모두가 참여해 규제를 논의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지금 우리는 반만년 역사상 최고의 풍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은 심화되고 도덕과 질서도 파괴됐다. 인문학의 부재 탓이다. 다행히 진주의 인문학은 현재 진행형이다. 각 분야별 전문가들의 연구가 어느 지역보다 활발하다. 진주의 역사를 알고 진주 정신을 계승하며 진주를 진주답게 하는 것, 그것이 자연과학으로는 풀 수 없는 인문학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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