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용의 경남극단사 막전막후(5)진해 극단 고도
이상용의 경남극단사 막전막후(5)진해 극단 고도
  • 경남일보
  • 승인 2024.10.0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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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예인들의 연극사랑이 빚어낸 고도의 연극사
벚꽃 도시로 유명한 진해에는 보물 같은 명소가 하나 있다. 바로 흑백다방이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의 서양화가 유택렬이 자신의 친구가 운영하던 칼멘다방을 인수한 후, 흑백다방이란 이색적인 옥호를 내걸고 1955년 문을 열었다는 그곳. 그 흑백다방이 해동 제일의 예인 사랑방으로 자리 잡을 줄을 어느 누가 알았으랴.

흑백다방을 모르면 예인이 아니라는 농언이 있을 정도로 그곳은 한 시기 진해의 명소였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흑백다방에 대한 헌사를 표하였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화가 김병종(전 서울대 미대 학장)의 헌사는 백미라 할 수 있다. “흑백다방. 화가 유택렬과 피아니스트 유경아 부녀의 집. 생전에 이중섭과 윤이상과 청마와 미당과 김춘수 같은 예술가들이 드나들던 사랑방 같은 곳. 음악감상실이자 연주회장이었고, 화랑이자 소극장이 되어왔던 곳. 50년이 다 되도록 물처럼 고요하게 그 거리 그곳에 그 모습 그대로 있는 진해 문화의 등대. 아버지는 삐걱이는 목조계단 올라 그 집 2층 화실에서 평생 그림을 그렸고 딸은 아버지가 일하는 동안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 곡을 연주하여 차향처럼 올려 보내드렸던 곳.”(조선일보, 2001. 4. 3.)

필자가 이처럼 모두에서 흑백다방을 언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진해 연극과 진해극단 고도 때문이다. 그리고 또 흑백다방을 개업한 유택렬은 진해 연극의 1세대이자 진해연극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화가인 그는 스태프(무대 디자인·장치) 일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배우로 무대에 직접 서기까지 했을 정도로 진해 연극을 위해 온 몸을 던진 인물이다.

 
‘흑백로망’ 홍보물.
진해 연극은 필자가 이 지면에서 언급한 여타 지역과는 달리 그 역사는 일천하지만, 활동 내용만큼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치열하게 활동했다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극단 고도를 언급하기 전에 진해연극의 흐름부터 일별해 본다.

진해 연극은 1963년 2월 진해연극협회의 창립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다. 창립 당시의 회원들은 회장을 맡은 이기태를 비롯한 유택렬·나석기·김상조·허경조·허청륭·홍기만 등이고, 그중에서도 특히 연출인 이기태와 스태프인 유택렬은 각각 초창기의 진해연극을 이끈 선구자들이다.

진해연극협회는 창립 1년 후인 1964년에야 비로소 ‘회색의 병실’(슈니츠라 작·이기태 연출)이란 작품으로 창립공연을 했다. 이어서 1965년 4월에는 ‘광부’(죠 코리샤 작·이기태 연출)를 공연하는데, 출연진은 엄창섭·한금용·록양·김영옥·황선하·홍의, 스태프진은 유택렬·정종원·허청륭·우영자 등이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이 작품에서 배우로 출연한 황선하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시인이란 사실이고, 화가인 유택렬과 허청륭이 스태프로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1966년 4월에는 ‘조국’(유치진 작·조인규 연출)을, 1968년 6월에는 ‘도둑고양이’(나석기 작·이기태 연출)를, 동년 12월 13일에는 ‘관광지대’(박조열 작·이기태 연출)를 각각 공연하기도 한다. 특히나 ‘관광지대’에는 이기태(연출)·유택렬(미술)·진병수(사진)·나석기(연극)·전기수(시인)·황선하(시인)·박정현(무용)·방창갑(시인)·지일규(시인)·강종칠(문학)·임복진(시인)·허청륭(미술) 등의 진해 예술인들이 총동원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관광지대’에서 유택렬은 무대장치를 전담하면서도 직접 배우로 출연했다는 점이 이채롭다. 스태프인 그가 배우로 직접 무대에 설 정도로 당시에 그는 열혈 연극인이었다는 말이다. ‘관광지대’에서 그는 흑인 미군 헌병 역을 맡았는데, 그가 무대에서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흑인 헌병 역을 얼마나 잘 연기했는지 모두가 박장대소를 했다는 에피소드가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다.

1970년 4월에는 ‘청혼’(안톤 체홉 작·이기태 연출)을, 1973년 4월에는 1인극 ‘버남의 숲’(오태근 작·배연호 연출)을 무대에 올린다. 이어 1978년 6월에는 ‘결혼’(이강백 작·진병식 연출)을, 1979년 10월에는 ‘그다음’(테렌스 맥날리 작·진병식 연출)을, 1980년 4월에는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이근삼 작·진병식 연출)를 각각 공연한다. 하지만, 1980년 8월에 접어들면 진해연극협회에는 변화가 생긴다. 신예인 진병식이 지부장을 맡아 협회를 재정비하고는 ‘결혼’과 ‘토끼와 포수’를 공연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1983년이 되면 드디어 극단 고도의 전신인 극단 터가 창단된다. 극단 터(대표 진병식)는 창단공연으로 ‘돈 내지 맙시다’를 필두로 ‘알’·‘농민’·‘어미’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그러나 극단 터는 1991년 문화사랑(대표 김휘주)으로 극단 이름을 바꾸고 활동에 들어가는데, ‘광인들의 축제’·‘종이연’·‘방황하는 별들’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1993년에 문화사랑은 진해무대(대표 이승목)로 또다시 이름을 바꾸고는 ‘시민 K’·‘팔불출’·‘스카팽의 간계’ 등의 작품을 공연한다. 1994년에 진해무대(대표 제성진)는 ‘시집가는 날’·‘들개’·‘흥부하고 놀부하고’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오케이 컷!’ 한 장면.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 장면.
드디어 2000년이 되면 극단 고도가 그 고고의 성을 울린다. 고도는 그해부터 진해무대에서 극단 고도로 또다시 이름을 바꾸고는 오늘날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데, ‘늙은 도둑 이야기’·‘슬픔의 노래’·‘유랑애사’·‘오케이 컷’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극단 터의 창단부터 계산하면 41년, 극단 고도로 이름을 바꾼 후부터 계산하면 24년의 역사를 가진 극단 고도. 아마도 국내 극단 중에서 가장 이름을 많이 바꾼 극단에 속할 것 같은 극단 고도. 그 고도가 흑백다방을 4~5년간 소극장으로 활용한 것도, 진해연극의 선구자 유택렬 화가의 간절한 염원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35회 경남연극제에서 당당하게 대상을 받은 극단 고도. 그 고도를 거쳐 간 연극인들도 제법 있다. 김휘주·제성진·유병철·서용수·김수희·김소정 등이 대표이다.

현재는 박동영 대표를 필두로 연출 차영우, 배우 이은경·박인희·이선무, 스탭 김종훈·이우철 등 10여 명의 단원이 똘똘 뭉쳐 극단 고도의 부활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는 풍문이다. 고도여, 발전하고 번창하라.

이상용 전문가(문학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해질역’ 포스터.
‘아이 라이크 유’ 포스터.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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