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국립김해박물관 개최…국내 첫 공개
오는 10월 8일부터 내년 2월2일까지 국립김해박물관에서 개최되는 ‘튀르키예 특별전-히타이트’는 인류 최초의 철기문명을 만나볼 수 있다. 히타이트 유물 전시회가 국내에서 열리기는 김해가 최초다.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는 ‘히타이트 사진전 : 야즐르카야-신들의 행렬’도 열린다. 이번 특별전에는 철기문화의 발상지 히타이트의 수도 보아즈쾨이-하투샤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검 및 점토판 등 212점을 선보인다.
이번 특별전은 김해시와 튀르키예 초룸시의 오랜 교류협력의 결과로 성사됐으며, ‘2024년 김해방문의 해’와 ‘제105회 전국체전·제55회 전국장애인체전’이 열리는 김해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귀한 볼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히타이트(HITTITE)는 기원전 17세기부터 기원전 12세기에 걸쳐 아나톨리아와 북부 시리아의 대부분을 통치했던 대제국이었다. 미지의 고대 문명이었던 히타이트는 19세기, 점토판 문자가 해독되면서 뛰어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고대 근동지역의 최강국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번 특별전은 프롤로그 ‘아나톨리아의 숨겨진 제국’, 1부 ‘오리엔트 최강의 제국’, 2부 ‘천신千神의 나라’, 3부 ‘두 개의 문자를 사용한 나라’, 4부 ‘제국의 삶과 문화’, 에필로그 ‘히타이트 제국의 유산, 가야에서 꽃피우다’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아나톨리아의 숨겨진 제국’=히타이트의 수도, 보아즈쾨이-하투샤 유적을 대형 프로젝트 영상으로 소개한다. 보아즈쾨이-하투샤유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성벽 둘레가 6㎞가 넘는 대규모 유적이다. 이번 영상에서는 왕궁·대사원 주요 유구의 모습을 3D로 복원하여 제국의 위용을 살핀다.
△1부 ‘오리엔트 최강의 제국’= 강력한 군사력과 외교술을 갖춘 히타이트의 청동 무기와 금속 제작 기술을 조명한다. 하투샤에 자리를 잡은 히타이트는 무르실리 1세(재위 기원전 1620년~기원전 1590년)때 아나톨리아를 넘어 남쪽으로 바빌론까지 이르렀다. 기원전 1274년, 이집트 람세스 2세와 맞붙은 카데시 전투는 오리엔트 세계의 패권을 둔 제국 간의 격돌이었다. 전투 이후 기원전 1259년 히타이트의 하투실리 3세와 이집트의 람세스 2세는 세계 최초로 공식 평화 조약을 맺었다. 평화 조약 점토판 사본은 미국 뉴욕 유엔본부 외벽을 장식하고 있다.
△2부 ‘천신의 나라’=종교적 관용으로 모든 신을 포용한 히타이트 사람들의 종교와 의례를 소개한다. 히타이트인들은 스스로‘하티 땅의 1000명의 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히타이트의 신(神)들은 원래 자신들의 신뿐만 아니라 그들이 점령한 나라나, 주변 나라의 신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민족의 신을 인정하고 융합하는 관용적인 종교 정책 덕분에 히타이트는 광대한 영토에 속한 많은 이들을 통합할 수 있었다.
△3부 ‘두 가지의 문자를 사용한 나라’= 쐐기문자와 상형문자로 남겨진 히타이트를 살핀다. 보아즈쾨이-하투샤유적의 문서보관소에서 출토된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문자는 히타이트어, 아카드어, 수메르어, 후르리어, 루비아어 등 8개 이상의 언어들이 기록돼 있다. ‘쐐기문자’가 지배층의 문자이자 공적(公的) 기록을 위한 문자라면, ‘상형문자’는 모든 사람을 위한 문자로 도장이나 공공장소의 기념물에 주로 새겨져 있다. 특히 하투샤유적 나산테페의 2번째 방(Chamber 2.)에는 길이 약 4m, 높이 약 2m의 대형 상형문자 석조물이 있는데, 국립김해박물관 팀이 직접 탁본해 온 전시물을 통해 상형문자의 아름다움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4부 ‘제국의 삶과 문화’= 토기, 장신구 등을 통해 히타이트인들의 일상을 다룬다. 당시에도 맥주와 비슷한 음료를 만들어 즐겼으며, 액체를 담는 토기가 많이 확인됐다. 남녀 성별에 따라 다른 옷을 입었고, 청동 장신구로 화려하게 치장했다. 농업 외에도 가축 사육과 양봉 등 다양한 생업 활동이 이루어졌다. 경제활동에서는 물품화폐가 이용됐는데, 은(銀)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에필로그 ‘히타이트 제국의 유산, 가야에서 꽃피우다’= 히타이트 멸망 이후 세계 각지로 뻗어나간 철기문화가 역사의 전환을 만들어 냈음을 보여준다. 히타이트에서 시작된 철(鐵)의 긴 여정 끝에 한반도에서 철(鐵)의 왕국(王國) 가야(加耶)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박준언기자
이번 특별전은 김해시와 튀르키예 초룸시의 오랜 교류협력의 결과로 성사됐으며, ‘2024년 김해방문의 해’와 ‘제105회 전국체전·제55회 전국장애인체전’이 열리는 김해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귀한 볼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히타이트(HITTITE)는 기원전 17세기부터 기원전 12세기에 걸쳐 아나톨리아와 북부 시리아의 대부분을 통치했던 대제국이었다. 미지의 고대 문명이었던 히타이트는 19세기, 점토판 문자가 해독되면서 뛰어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고대 근동지역의 최강국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번 특별전은 프롤로그 ‘아나톨리아의 숨겨진 제국’, 1부 ‘오리엔트 최강의 제국’, 2부 ‘천신千神의 나라’, 3부 ‘두 개의 문자를 사용한 나라’, 4부 ‘제국의 삶과 문화’, 에필로그 ‘히타이트 제국의 유산, 가야에서 꽃피우다’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아나톨리아의 숨겨진 제국’=히타이트의 수도, 보아즈쾨이-하투샤 유적을 대형 프로젝트 영상으로 소개한다. 보아즈쾨이-하투샤유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성벽 둘레가 6㎞가 넘는 대규모 유적이다. 이번 영상에서는 왕궁·대사원 주요 유구의 모습을 3D로 복원하여 제국의 위용을 살핀다.
△1부 ‘오리엔트 최강의 제국’= 강력한 군사력과 외교술을 갖춘 히타이트의 청동 무기와 금속 제작 기술을 조명한다. 하투샤에 자리를 잡은 히타이트는 무르실리 1세(재위 기원전 1620년~기원전 1590년)때 아나톨리아를 넘어 남쪽으로 바빌론까지 이르렀다. 기원전 1274년, 이집트 람세스 2세와 맞붙은 카데시 전투는 오리엔트 세계의 패권을 둔 제국 간의 격돌이었다. 전투 이후 기원전 1259년 히타이트의 하투실리 3세와 이집트의 람세스 2세는 세계 최초로 공식 평화 조약을 맺었다. 평화 조약 점토판 사본은 미국 뉴욕 유엔본부 외벽을 장식하고 있다.
△2부 ‘천신의 나라’=종교적 관용으로 모든 신을 포용한 히타이트 사람들의 종교와 의례를 소개한다. 히타이트인들은 스스로‘하티 땅의 1000명의 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히타이트의 신(神)들은 원래 자신들의 신뿐만 아니라 그들이 점령한 나라나, 주변 나라의 신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민족의 신을 인정하고 융합하는 관용적인 종교 정책 덕분에 히타이트는 광대한 영토에 속한 많은 이들을 통합할 수 있었다.
△3부 ‘두 가지의 문자를 사용한 나라’= 쐐기문자와 상형문자로 남겨진 히타이트를 살핀다. 보아즈쾨이-하투샤유적의 문서보관소에서 출토된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문자는 히타이트어, 아카드어, 수메르어, 후르리어, 루비아어 등 8개 이상의 언어들이 기록돼 있다. ‘쐐기문자’가 지배층의 문자이자 공적(公的) 기록을 위한 문자라면, ‘상형문자’는 모든 사람을 위한 문자로 도장이나 공공장소의 기념물에 주로 새겨져 있다. 특히 하투샤유적 나산테페의 2번째 방(Chamber 2.)에는 길이 약 4m, 높이 약 2m의 대형 상형문자 석조물이 있는데, 국립김해박물관 팀이 직접 탁본해 온 전시물을 통해 상형문자의 아름다움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4부 ‘제국의 삶과 문화’= 토기, 장신구 등을 통해 히타이트인들의 일상을 다룬다. 당시에도 맥주와 비슷한 음료를 만들어 즐겼으며, 액체를 담는 토기가 많이 확인됐다. 남녀 성별에 따라 다른 옷을 입었고, 청동 장신구로 화려하게 치장했다. 농업 외에도 가축 사육과 양봉 등 다양한 생업 활동이 이루어졌다. 경제활동에서는 물품화폐가 이용됐는데, 은(銀)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에필로그 ‘히타이트 제국의 유산, 가야에서 꽃피우다’= 히타이트 멸망 이후 세계 각지로 뻗어나간 철기문화가 역사의 전환을 만들어 냈음을 보여준다. 히타이트에서 시작된 철(鐵)의 긴 여정 끝에 한반도에서 철(鐵)의 왕국(王國) 가야(加耶)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박준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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