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아픈 역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3)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
지역의 아픈 역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3)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
  • 박성민
  • 승인 2024.09.25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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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전후 세대 함께하는 '반전' 교육장

100여 명이 넘는 학생·교사들 전쟁에 희생
오키나와 전쟁의 깊은 상처가 아물지 않아

전쟁의 잔인함, 목숨의 소중함 배여있는 곳




오키나와 본섬 남부에 있는 ‘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은 수학여행으로 고교생이나 중학생 단체가 많이 찾을 정도로 일본 내에서 지명도가 높은 박물관이다.

지난해에는 약 40만명이 이곳을 방문한 가운데 올해 6월 개관 35주년을 맞았다. ‘히메유리’란 오키나와 사범학교 여자부와 현립 제일고등여자학교의 애칭이다. 오키나와 전쟁에서 학생과 교사 총 240명이 오키나와 육군병원에 동원돼 136명이 숨졌다. 전후 이들은 ‘히메유리 학도대’로 불리게 된다. 이곳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전시’라는 콘셉트로 자료관 설립 경위나 전시실 마다의 특징을 소개하고 있다.

히메유리 평화기념관 정문에서 관람객들이 헌화를 가지고 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히메유리 평화기념관 전시 막바지에 걸려있는 평화를 상징하는 글귀가 눈에 띈다.
◇일본군을 믿었던 학생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1945년 3월부터 3개월 여 동안 미일 양군은 오키나와에서 지상전을 벌였다.

오키나와 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에서 일본군은 병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남녀 중등학교 학생들을 전장에 동원했고 오키나와전 전사자는 20만 명 이상이나 됐다.

이곳에서는 학교가 점차 군사화되고 학생들이 일본군에 동원되기까지의 과정을 먼저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기숙사 창가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학생들의 사진으로 시작된다. 오키나와 사범학교 여자부와 현립 제1고등여학교는 부지와 시설을 공유하고 있었다. 학교에는 붉은 기와의 교사와 기숙사, 도서관, 체육관, 테니스장, 수영장 등의 충실한 시설과 본토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교사가 갖추어져 있었다. 13~19세 학생들에게 학교는 노래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즐거운 곳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는 웃는 사진이 말해준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천황을 위해 기꺼이 일하고 전시에는 목숨을 바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학교는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가르치는 장소였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대동아공영권(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고 일본을 맹주로 하는 아시아 세계의 공존공영)이 전쟁의 목표라고 믿었다. 학생들은 일본군의 진지구축이나 육군병원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지금이야말로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키나와 전쟁이 시작되기 전 태평양 전선에서 패배를 거듭해 일본의 패전은 확실해졌다. 그러나 일본군은 오키나와에서 미군을 상대로 옥쇄작전을 펼치며 결사항전을 하게 된다. 그런 줄 모르는 학생들은 일본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고 전장으로 향했다. 1945년 3월 23일 미군은 오키나와 본섬 상륙을 앞두고 폭격을 시작했다. 그날 늦은 밤 학생 222명은 18명의 교직원의 인솔을 받아 오키나와 육군병원을 향해 학교를 출발했다. 동원된 학생들은 15~19세였다.

 
히메유리 평화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히메유리탑.
히메유리 평화기념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관련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생존자가 주체가 되어 만든 전시

전후 1946년 4월 오키나와 본섬 남부 히메유리탑이 건립됐다.

그 장소는 미군의 공격으로 히메유리 학생 교사 42명을 포함해 80여 명이 숨진 곳이다. 일본 내에서 전후 얼마 지나지 않아 ‘히메유리의 탑’은 오키나와전 비극의 상징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포로수용소 안에서 병사들에 의해 그려진 애국심에 불타는 소녀들의 이야기는 소설 연극 영화 등의 소재가 됐다.

 
후텐마 쵸케이 히메유리 평화기념관 관장이 1944년 3월 촬영된 교직원들과 학생들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반면 생존자 상당수는 오랫동안 전쟁체험을 얘기하지 않았다. 많은 친구들이 죽었는데도 자신이 살아 남은 것에 대한 우울함,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친구를 두고 간 것에 대한 죄책감, 유족에 대한 생각 때문에 살아남아 미안하다는 생각이 그들을 휘감았다. 전후 44년이 지난 1989년 6월 23일 히메유리 동창회는 오키나와 전쟁 종료일에 히메유리의 탑 옆에 히메유리 평화기원 자료관을 설립했다. 자료 수집과 증언 문자 깨우기, 전시 만들기에 분주한 생존자들은 자료관 설립을 계기로 전쟁 체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 전시의 주제는 ‘전쟁과 교육’이다. 생존자들은 설립이념에서 ‘우리는 진실에서 눈을 가리고 인간다운 판단과 사고도, 살 권리조차 빼앗기고 죽음의 전쟁터에 내몰린 그 시대 교육의 무서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2004년에는 전쟁 체험을 전할 수 있는 전시를 목표로 전시 리뉴얼을 실시했고 2021년 4월에는 전후 출생 직원이 중심이 되어 두 번째 전시 리뉴얼을 실시하기도 했다.

박성민기자



 
히메유리 평화기념관을 찾은 어린 학생들이 편지를 쓰고 있다.


“전쟁에 대한 올바른 인식 중요”

후텐마 쵸케이 히메유리 평화기념관 관장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본토 사람들은 대부분 미군의 공습으로 인한 피해가 있었을 뿐 오키나와 같은 처절한 지상전은 겪지 않았다.

오키나와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인들은 항상 ‘목숨은 보물’이라는 말을 되새기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전쟁으로 인해 오키나와인들은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직접 경험한다. 그들은 일본군에도 미군에게도 피해를 입으면서 목숨의 위협을 느낀다.

당시 오키나와 인구 50만 여명 가운데 20만 명 정도가 희생됐는데 그 중 12만 명이 오키나와 본섬 중부 사람들이었다. 후텐마 쵸케이 히메유리 평화기념관장은 오키나와 전쟁을 겪지 않은 첫 세대로 할아버지, 사촌들 역시 전쟁으로 희생이 됐고 이후 삶의 터전인 중부지역에서 남부로 이주했다. 그는 “전쟁 이후 1953년부터 히메유리에 대해 본토인들이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전쟁에 대한 반성이 아닌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로 생각했다. 이 부분에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전쟁에 대해 아름답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들이 혹시 전쟁을 좋은 것으로 생각할 수 도 있다. 전쟁은 더 이상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전쟁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목숨에 소중함에 대해 강조했다. 후텐마 관장은 “전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이곳을 알리는데는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취재협조 뿐 아니라 연극이나 뮤지컬 제작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특히 이곳을 주제로 한 영화가 나온지 오래됐는데 다시 리메이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은 오키나와 전쟁에 대해 알아가는 곳이자 관광지이기도 하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장소다. 평화에 대한 간절함, 전쟁의 잔인함, 목숨의 소중함을 꼭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성민기자

 
후텐마 쵸케이 히메유리 평화기념관 관장이 히메유리 기념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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