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그리움의 발원지 귀곡동 까꼬실 둘레길
[시민기자]그리움의 발원지 귀곡동 까꼬실 둘레길
  • 경남일보
  • 승인 2024.08.2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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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대교를 건너자 길은 외딴섬 깊은 심장부로 빨려들 듯 깊어진다.

물살이 숲을 토닥이는 소리가 갯바위 파도처럼 사각거리고 우거진 녹음은 유배지인 듯 오싹하다. 두근거림을 안고 까까머리 어린 밤송이들이 초롱초롱 영글어가는 비탈길을 올라서면 능선 삼거리에서 길은 시작된다.

오늘은 황학산을 기점으로 꽃동실까지 이어지는 ‘하늘 숲길’을 따라 대숲이 깊은 ‘바람 소리길’을 지나고 옛 분교 터에 안겨보는 ‘추억 담는 길’을 걸으며 그리움의 발원지를 만나려 한다. 이제는 물밑에 추억으로 박재 된 까꼬실의 옛길이 새롭게 단장되면서 육지 속 섬 같은 오지 탐험의 재미와 추억을 소곤소곤 만날 수 있는 힐링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황학산에 오른다. 아름드리 소나무의 사열이 범상치 않다. 유려하게 날개를 펼친 능선이 봉황을 품은 듯 이름값을 한다. 한 굽이 올라서면 전망대를 만난다. 경호와 덕천이 남강에 안기며 산중 바다가 장쾌하게 펼쳐진다. 더위에 지친 산과 나무와 구름이 호반에 몸을 담근 채 멱을 감고 있다. 나도 눈과 마음을 맡긴다. 비지땀이 덩달아 뛰어든다. 그늘도 쉬고 있는 여정에 서두를 이유가 없다. 서두름에 저당 잡히지만 않는다면 사는 일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숲이 고도를 낮추더니 이내 별천지가 펼쳐진다. 편백숲이다. 냉장고를 열어 둔 듯 냉풍이 들이닥친다. 달콤하다. 이 숲은 전기요금 걱정 없어 좋겠다며 또 엉덩이를 붙인다. 모자도 벗고 신발도 팽개친 채 덥석 눕는다. 마음 같아서 홀딱 벗고 싶지만, 숲과 바람에 대한 멋쩍은 예의를 앞세워 지그시 눈을 감는 것으로 의식을 진행한다. 엄마표 된장찌개 같기도 하고 달콤한 망고 빙수, 아니면 서리한 수박이나 참외 같은 맛이 시나브로 숲을 메운다.

애틋한 향수와 그리움이 꼬물거린다. 까꼬실 냄새일까? 나는 지금 물에 잠든 마실 뒷동산을 걷고 있다. 사라진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하늘 숲길을 건너 바람 소리길로 접어든다.

좌우로 물을 낀 채 구름다리처럼 출렁이듯 이어진 길은 고인돌과 먼당을 지나며 깊어진다. 그리고 이내 강물로 스며들 듯 빨려들더니 다시 힘차게 활공하면서 화룡점정 하나 꽂는다. 꽃동실이다. 가호 전망대라 불리는 이곳은 대간의 막대인 듯 앙증맞다. 봉창처럼 열린 숲사이로 진양호가 시원한 물침대를 깔아 놓았다. 그 너머 호반 전망대와 남강댐을 움켜쥔 채 까꼬실의 추억과 지리산의 애환을 이식시키고 있다. 줄에 묶인 돛단배처럼 금시라도 떠내려갈 듯 두둥실 떠 있는 꽃동실은 이름도 예쁘지만 사연도 깊어 나는 오랫동안 머무른다.

까꼬실의 백미는 바람 소리길이다. 꽃동실에서 한골까지 대숲이 넘실거린다. 길섶엔 코흘리개 동무처럼 재잘대는 물살과 맨발로 뛰놀던 은빛 모래톱이 고향만 같아 걸음을 아낀다. 바람에사각거리는 대숲의 밀어 사이로 사립문 열고 고향 사람들 나올 것만 같아 자꾸 고개를 돌린다. 나의 고향 집 어귀에도 대숲이 울창했다. 그곳은 늘 두려움과 호기심 그 중간 어디쯤이었다. 비밀들은 모두 대숲에 숨겨 놓았다. 꼬까실의 시간도 이 숲에 살고 있을 것이다. 바람 좋고 볕 맑은 날 까꼬실 비밀들 하나둘 마실 가라고 울타리치고 잔가지도 골라 꽃단장해 놓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바람 소리길이 되었다.

당산나무 꼭대기에 올라 바라보는 고향 동리같이 가곡 탐조대의 조망은 일품이다. 집터와 빈 밭을 지킨 여름 푸성귀들이 고목 그늘에 기대에 더위를 식힌다. 나도 끼여 냉수 한 사발 마신다. 여행은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무심한 그늘에 뜬금없이 앉다 보니 한골 편백숲이다. 지친 한낮의 더위들이 들어와 쉬고 있다. 새들도 목청을 아끼고 물살도 잠수 중인데 건너편 대숲 사이로 재잘거림이 심상찮다.

추억 담는 길로 들어선다. 짐짓 고개 돌리니 학교 가는 동무들 우르르 몰려나올 듯 대숲이 환하다. 쌓다 만 기억들 가득한 교정을 지고 갈마봉 전망대에 올라 바람에게 다 돌려준다. 우린 모두 타향이고 수몰민처럼 살아간다. 그 골목 다정한 이웃/그 물가 백사장 눈부신 햇발/마을을 떠나 어디로 가 있는가. 시인(강희근)의 말을 되뇌며 하늘과 바람과 추억을 만난 길 위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리움의 발원지 까꼬실을 만난다. 

이용호 시민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그리움 품은 청정한 바람이 가득찬 까꼬실 바람소리길을 탐방객들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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