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김남순 교수의 어머니 시리즈 수필집과 ‘화랑집’(2)
다음은 수필 「펜데믹 속 추억」 시작 부분이다.
“펜데믹 속 두 번째 추석이다. 어제는 고향 막내 남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백신도 2차 접종까지 완료했는데 귀향하면 어떠냐고. 작년 11월 말 엄마 6주기를 위한 귀향계획은 직전에 취소했다. 고향 조카들이 직장에서 수도권 사람들과 접속하지 말라는 공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 우리 가족 모임은 어느새 2세대 주니어 중심이 된다.
가고 싶지만… 엄마를 못 만난 세월이 1년 4개월이나 된다. 매월 쫓아다닌 탓일까.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간 것 같다. 올 늦가을 엄마 7주기는 고향에서 다 만나 제사도 지내고 성묘도 하고 싶다. (중략) 올해도 추석에는 동네 성당에 가서 신부님 위령미사를 통해 엄마께 그리운 안부를 띄울 수밖에 없다.
엄마 이해하시지요? 곧 뵐 수 있는 날 기다립니다!”
글은 전세계가 같이 앓고 같이 감내했던 마스크 시대, 거리두기 시대, 접종의 대열 시대, 다시는 맞이하고 싶지 않은, 그 코로나19의 절대 전염시대를 기록해 놓고 있다. 어찌 우리가 그 시대를 잊으랴? 그런데 김교수는 가족사의 일부, 어머니를 함께 그리는 펜데믹을 그 절절한 귀성에의 의지를 아름다이 그리고 있다.
필자에게는 문학작품 범람의 시대에 ‘어머니 시리즈’를 내다니, 김교수가 보내온 그 세 번째 문집이 손에 잡히고 아차, 어머니에 대해 제대로 모셔보지 못한 자성이 절절한 때에 그 사랑, 그 흔한 주제에 마침내 그냥 나포가 되었다.
요즘 경향간에 시, 시조, 수필, 소설 등등 문학 출간의 자유로운 시절에 쇄도해 오는 저술들! 필자의 연구소에도 아직 뜯기지 않은 채 기다림에 지쳐가는 무리의 책들이 상당하다. 우리나라 문인들 그중 중진에 속하는 이들은 신간과의 사이에 나름의 독파 전략을 짜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필자는 최근 아내를 잃고 백일미사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 데다 아직 아내가 병상에 있을 때 아들 며느리의 헌신과 생래적 효심의 딸애, 한 호흡으로 생명의 강에 노를 저어 지금 여기 와 있다. 이런 사람의 손에 김교수의 “이른 아침 동해바다/ 엄마--! 하고 외쳐대는 그 에쎄이가 손에 잡혀 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계절이 너무 찬란하고 눈부셔 차라리 고독해지는 날 엄마를 찾아 나선다/ 돌아가신지 7년/ 매월 귀향해 가던 성묘도 못간 코로나 세월 2년/ 엄마 잘 계세요?”
이 구절 구절이 신기하게도 필자의 눈에 들어와 앉는다. 그리고 김교수의 고향인 진주가 착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교수의 두 동생이 살고 있고 그 어머니의 유택이 있는 진주!
그러자 김교수의 어머니께서 경영하던 진주시 대안동 언저리 착한 ‘화랑집’이 떠오른다. 화랑집은 김교수가 초등학교 6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께서 유산이 없는 집 형편에 자식들 4남매를 키우기 위해 진주시 장대동 사는 집 근처에 지인이 운영하던 우동집을 인수했던 데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는 일본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귀환동포 처지라 당시로서는 지식인 여성이었다.
필자도 젊은 교사시절 한 소박한 우동집 ‘화랑집’에 최용호 등 젊은 문인들 틈에 끼여 드나들었다. 비로소 진주시민이 된 듯했다. 박용수, 이월수, 강동주, 김영화, 조정남,이영성, 신찬식 등과 삼현여고가 생기면서 김석규, 박재두 등이 준단골이 되었다.
화랑집 명물은 우동과 오뎅인데 우동은 중국집 우동이 아니고 일본식 우동이었다. 마트에서 파는 야누끼 우동과 비슷한 맛이었다고 신찬식 시인이 회상했다. 이어 “가게 벽면에 ‘통국수’라 적혀 있었어요. 청동다방(개천예술제 산실) 비스듬히 건너편의 화랑집 초기엔 우동과 공기밥 세트가 인기 있었고 공무원, 기자 등 지역사회 중견급 인사들이 애용하며 담소를 즐긴 장소로 기억되는 군요”하고 줄줄 시험시간 답쓰듯이 신나게 읊었다. ‘진주 뒷골목의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풍속도처럼’이라는 시 한 편 방금 탈고한 것일까?
“펜데믹 속 두 번째 추석이다. 어제는 고향 막내 남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백신도 2차 접종까지 완료했는데 귀향하면 어떠냐고. 작년 11월 말 엄마 6주기를 위한 귀향계획은 직전에 취소했다. 고향 조카들이 직장에서 수도권 사람들과 접속하지 말라는 공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 우리 가족 모임은 어느새 2세대 주니어 중심이 된다.
가고 싶지만… 엄마를 못 만난 세월이 1년 4개월이나 된다. 매월 쫓아다닌 탓일까.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간 것 같다. 올 늦가을 엄마 7주기는 고향에서 다 만나 제사도 지내고 성묘도 하고 싶다. (중략) 올해도 추석에는 동네 성당에 가서 신부님 위령미사를 통해 엄마께 그리운 안부를 띄울 수밖에 없다.
엄마 이해하시지요? 곧 뵐 수 있는 날 기다립니다!”
글은 전세계가 같이 앓고 같이 감내했던 마스크 시대, 거리두기 시대, 접종의 대열 시대, 다시는 맞이하고 싶지 않은, 그 코로나19의 절대 전염시대를 기록해 놓고 있다. 어찌 우리가 그 시대를 잊으랴? 그런데 김교수는 가족사의 일부, 어머니를 함께 그리는 펜데믹을 그 절절한 귀성에의 의지를 아름다이 그리고 있다.
필자에게는 문학작품 범람의 시대에 ‘어머니 시리즈’를 내다니, 김교수가 보내온 그 세 번째 문집이 손에 잡히고 아차, 어머니에 대해 제대로 모셔보지 못한 자성이 절절한 때에 그 사랑, 그 흔한 주제에 마침내 그냥 나포가 되었다.
요즘 경향간에 시, 시조, 수필, 소설 등등 문학 출간의 자유로운 시절에 쇄도해 오는 저술들! 필자의 연구소에도 아직 뜯기지 않은 채 기다림에 지쳐가는 무리의 책들이 상당하다. 우리나라 문인들 그중 중진에 속하는 이들은 신간과의 사이에 나름의 독파 전략을 짜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필자는 최근 아내를 잃고 백일미사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 데다 아직 아내가 병상에 있을 때 아들 며느리의 헌신과 생래적 효심의 딸애, 한 호흡으로 생명의 강에 노를 저어 지금 여기 와 있다. 이런 사람의 손에 김교수의 “이른 아침 동해바다/ 엄마--! 하고 외쳐대는 그 에쎄이가 손에 잡혀 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계절이 너무 찬란하고 눈부셔 차라리 고독해지는 날 엄마를 찾아 나선다/ 돌아가신지 7년/ 매월 귀향해 가던 성묘도 못간 코로나 세월 2년/ 엄마 잘 계세요?”
이 구절 구절이 신기하게도 필자의 눈에 들어와 앉는다. 그리고 김교수의 고향인 진주가 착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교수의 두 동생이 살고 있고 그 어머니의 유택이 있는 진주!
그러자 김교수의 어머니께서 경영하던 진주시 대안동 언저리 착한 ‘화랑집’이 떠오른다. 화랑집은 김교수가 초등학교 6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께서 유산이 없는 집 형편에 자식들 4남매를 키우기 위해 진주시 장대동 사는 집 근처에 지인이 운영하던 우동집을 인수했던 데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는 일본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귀환동포 처지라 당시로서는 지식인 여성이었다.
필자도 젊은 교사시절 한 소박한 우동집 ‘화랑집’에 최용호 등 젊은 문인들 틈에 끼여 드나들었다. 비로소 진주시민이 된 듯했다. 박용수, 이월수, 강동주, 김영화, 조정남,이영성, 신찬식 등과 삼현여고가 생기면서 김석규, 박재두 등이 준단골이 되었다.
화랑집 명물은 우동과 오뎅인데 우동은 중국집 우동이 아니고 일본식 우동이었다. 마트에서 파는 야누끼 우동과 비슷한 맛이었다고 신찬식 시인이 회상했다. 이어 “가게 벽면에 ‘통국수’라 적혀 있었어요. 청동다방(개천예술제 산실) 비스듬히 건너편의 화랑집 초기엔 우동과 공기밥 세트가 인기 있었고 공무원, 기자 등 지역사회 중견급 인사들이 애용하며 담소를 즐긴 장소로 기억되는 군요”하고 줄줄 시험시간 답쓰듯이 신나게 읊었다. ‘진주 뒷골목의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풍속도처럼’이라는 시 한 편 방금 탈고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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