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발굴 조사 이후 40여 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지만 당시 늑도에서 삶을 영위했던 이들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사천시는 2003년 늑도가 국가사적으로 지정되고 나서 처음으로 지난해 2월 울산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새로운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를 했다.
한 달가량 진행된 학술발굴은 890㎡(약 250평) 면적에 대한 것이지만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주거지에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초기 형태의 온돌시설이 확인되고 철제 검이 땅에 꽂힌 채 출토됐다.
◇작은 섬에 주거지와 매장지 밀집
책임조사원으로 발굴에 참여한 이수홍 울산문화재연구원 조사실장은 “발굴 조사를 해 보니 늑도 유적은 정말 우리나라 최고의 보물섬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늑도 처럼 작은 섬에 주거지와 매장지가 그렇게 밀집돼 있는 사례는 아직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농경지가 있는 곳도 아니고 사냥할 수 있는 곳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작은 섬에 모여 살아갔다는 게 신비롭게 다가왔다는 것.
그는 “다른 유적에서는 최고 권력자의 매장지에서 부장품으로 출토되는 물품들이 늑도에서는 주거지에서 나오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고 했다.
대표적인 물품이 세형동검인데 늑도 유적에서는 최고 권력자다운 형태가 아닌 매장지에서 출토됐다.
이 조사실장은 “같은 의미로 주로 부장품으로 발견되는 철제 검인 둥근 고리칼도 귀한 유물인데 늑도에서는 주거지에서 땅에 꽂힌 채로 발굴됐다. 그곳이 어떤 제사나 의식을 치르던 곳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지에서는 초기 형태의 ‘온돌’ 시설과 조리도구인 ‘시루’가 출토되면서 당시 녹도가 앞선 선진문물을 보유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비교적 따뜻한 늑도에서 남부지방에서 가장 빠른 시기로 추정되는 온돌시설이 발견된 점도 학자들은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다.
온돌시설은 모든 주거지에 다 있는 것은 아니어서 지배층이나 혹은 숙박시설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루’는 쌀과 곡식을 쪄서 먹는 조리도구로 당시의 음식조리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도구다.
학계는 이들 유물이 북방지역과의 교류가 활발했다는 증거로 보고 있다.
홍보식 공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시루는 늑도 뿐만 아니라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도 출토되는데 이는 당시의 고대 무역항로가 선진문화를 전파해 주는 주요 루트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늑도 유적은 200여 년간 형성
늑도의 유적은 시간상으로 200여 년에 걸쳐 증·개축한 흔적이 남아 있다. 늑도는 섬 전체로 보면 두 산봉우리가 있다. 이 두 산봉우리 사이에 패총과 주거지 및 건물지, 매장지 등이 조밀하게 구성돼 있다.
패총은 발굴된 A 지구와 B 지구, C 지구에 각각 형성되어 있다. 주거지는 A 지구와 B 지구에 집중돼 있으며 주거지 간 증·개축한 흔적이 있다. 주거지의 형태는 원형 구조가 많다.
주거지 내부는 판석을 세우거나 흙을 쌓아 터널형의 고래를 만들고 부뚜막을 설치한 것도 있다. 부뚜막은 고래에 부착된 것과 고래가 없는 구조로 구분된다. 주거지의 규모는 대형이 지름 6~7m, 소형은 지름 4~5m 정도이다. 방형으로 된 주거지도 있는데 내부에 아무런 시설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일부에서 부뚜막 시설이 있는 것도 확인된다. 대체로 원형보다 방형 주거지가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 외 B 지구에는 건물지로 추정되는 길이 20m의 대형 T자형 유구 1기가 확인되었고, A 지구에서는 제철 관련 노지와 송풍관, 철 찌꺼기 등이 출토됐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 가운데 늑도 유적이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직 섬의 일부분만 발굴했는데도 현재까지 확인된 집터만 최소 수백 가구다.
이창희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교수는 “섬의 핵심지역인 마을부지가 아직 발굴 조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00년 전 늑도에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주거지의 구조다. 일부 주거지에는 대형 기둥의 흔적도 발굴됐다. 기둥구멍 지름과 크기를 보면 큰 기둥들이 연결되는 구조이다.
대형 기둥의 흔적이 나온 것은 습기가 많은 섬 환경을 고려해 지은 대형 창고나 지배층이 거주하는 큰 고상 가옥, 일종의 원두막처럼 해안을 감시하던 망루로 볼 수 있는 높은 건물이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매장지에서도 한·중·일의 문화적 특색이 드러나고 있다. 늑도에서 현재까지 발굴된 매장지를 보면 여자와 아이의 비중이 높고 몸을 구부려서 매장하는 굴장 방식과 엎드려서 매장한 복장 방식도 발견됐다. 인위적으로 발치를 한 흔적도 나왔다.
이 교수는 “득도의 주거지와 매장지를 보면 당시 늑도에 한·중·일의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섬 전체가 보물 창고”
이수홍 울산문화재연구원 조사실장
늑도는 여러 면에서 정말 놀라운 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연구원에서 시행한 발굴 조사는 사천시가 매입한 2~300평 남짓한 일부 부지에 한정했지만, 발굴 성과는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발굴에서 주거지에서 발견된 기둥구멍 자리를 눈여겨보았다. 보통 이러한 기둥의 흔적은 땅에 습기나 쥐 때문에 원두막과 같은 고상 가옥의 형태이거나 창고나 망루로도 볼 수가 있다.
늑도의 경우 남해안의 다른 지역에 비교해 기둥의 구멍 크기가 큰 게 특징이다. 그만큼 튼튼하게 지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지배층의 거주 공간이나 제사나 다른 용도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발굴은 훼손을 전제로 하므로 되도록 안 하는 게 좋다. 나중에 더욱더 나은 기술과 인력으로 발굴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만약 목표가 명확하게 정해지고 앞으로 추가 발굴을 하게 된다면 지금의 마을부지가 중요할 것 같다. 섬에서 가장 거주환경이 좋은 곳이기 때문에 2000년 전에도 그곳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늑도라는 섬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가 된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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