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100주년 형평운동의 눈으로 바라본 오늘날의 인권
[여성칼럼]100주년 형평운동의 눈으로 바라본 오늘날의 인권
  • 경남일보
  • 승인 2023.06.0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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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을 현실로 만들고자 나섰던 사람들이 진주에 있었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백정도 사람이라고 외친 백정해방운동인 형평운동은 저울처럼 공평한 사회를 만들자며,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 문제제기한 대단히 의미 있는 인권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났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인권은 얼마나 보장받고 있을까? 이제 정말 백정은 사라졌을까 질문해본다. 
얼마 전 진주의 한 장애아동 전담어린이집에서 교사에 의한 아동학대가 발생했다. 사건을 인지하고 신고한 것은 작년이었는데, 경찰수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최근 들어 언론에 보도되며 공론화됐다.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아동학대는 우리 사회에서 아동인권의 현주소를 다시 확인하게 한다. 더구나 장애아동은 몇 배로 취약한 위치에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기 힘든 발달장애아동이 노란색 어린이집 차만 봐도 질색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피해 부모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직접 학대당하지 않았지만, 다른 어린이집을 당장 보낼 곳이 없다는 이유로 계속 보낼 수밖에 없었던 장애아동부모의 상황에 서 본다. 모든 아동의 학습권은 보장해주어야 한다. 나름 우리에게는 학교선택권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나의 권리가 아닌 이들이 있다. 계단만 있는 건물에 진입할 수 없는 사람이 있고, 공공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참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비닐하우스를 주거제공으로 여겨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남들이 출퇴근하는 시간에는 움직이면 안되는 사람, 이동하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과 계획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편적인 인권이 누군가는 몇 배의 노력을 해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차별이다. 

 기실 여성들은 모든 영역에서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놓고 아동동반 진입을 막는 노키즈 까페는 흔하다. 까페 앞에서 내가 느낀 모멸감과 좌절감은 공공의 구성원으로 거절당한 차별이었다. 공공의 모든 영역에 모든 사람이 참여가능한 것 같지만 일과 시간, 특정 공간에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엄마는 공공영역의 회의나 포럼, 공청회, 간담회 등에 아이를 안고 참여하는데 몇 배의 노력과 어려움을 각오해야 한다. 실제 아이를 안고 참여를 해도 눈치를 받는다. 혼자 사는 여성들은 안전을 위해 거주비를 많이 써야 하며, 딸들의 부모는 늦은 귀가나 안전한 데이트와 이별, 스토킹 등 아들보다 걱정해야 할 일들이 많다.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을 작게 받는 것을 감내하고, 비정규직을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많은 여성들이 있다.
차별과 혐오가 심해지면 차별과 혐오를 피해 노련하게 살아남은 자들이 많아진다. 많은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일상에서 마주하는 차별을 모른척하거나 참아내고 있다. 결국 차별이 심해지면 차별이 보이지 않는다. 
100년 전 백정의 아이들을 학교 보내기 운동을 했던 형평운동은 당시 치열한 투쟁이었다. 백정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던 시대, 동일한 학습권 보장을 위해 아이들 손을 잡고 나섰던 강상호 선생이 존경스럽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백정과 같은 차별을 경험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오늘날 백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배제되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불편하더라도 우리는 일상의 차별을 발견하고 마주해야 한다. 차별을 드러내고 해결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 약자의 편에 서서 차별을 보는 눈, 고통을 들을 수 있는 귀와 공감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차별당사자의 용기와 실천을 시작으로 평등으로 나아가는 길은 연대와 협력이다. 연대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차별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인권이 당연한 정치적 가치가 되어야 제도와 구조를 평등하게 마련할 수 있다. 공평을 생각하며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는 마음으로 연대하여 형평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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