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청곡교차로→삼봉산→현촌마을→망운산→kbs송신탑 방향→삼거리 봉우리→관대봉(가마봉)→평현마을
남해군 고현면 오곡리 19번국도 남해대로 상 가청곡교차로가 2코스 출발지이다. 새진주식당 주변 공터에 주차가 가능하다.
조선지형도에는 오곡리에 가청현으로 표기돼 있다. 임진왜란 전 군사지도에 육지를 푸르게 칠했다고 해서 가청곡, 또는 왜군들이 갇혔다 해 갇힌 곡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러나 이는 바다가 깊숙이 들어간 갇힌 고개가 와전돼 가청이가 됐다고 한다.
봄비가 그친 새아침, 부서지는 햇살, 산에는 야생초가 양탄자처럼 깔려있다. 싱그러운 대지의 초목이 탐방객을 반긴다.
큰 쉼 호흡 한번으로 “잘 있었나, 산을 만나려 다시 왔다” 인사를 건넨다.
삼봉산 뿌리에는 사람살이의 흔적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봄 향기 가득 머금은 ‘땅두릅’을 수확하지 않고 방치한 것은 의외다.
농촌 수익사업으로 시작한 대규모 농작물경작인데 초여름 이 시기 허리춤까지 자라도록 수확이 안된 것은 무슨 사연인지…, 타산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린 듯했다. 살짝 데쳐서 먹는 대표적인 산나물이다. 10여분을 걸어야 두릅밭을 벗어날 수 있다.
삼봉산 오름길, 지맥 주변에는 땅의 경계를 표시한 돌담이 줄지어 있어 땅의 주인이 따로 있음을 알려준다. 지맥는 삼봉산에서 솟아 사방의 전망을 보여준다. 정상에서 300m를 되돌아와 갈림길에서 현촌마을로 떨어진다. 현촌마을은 망운산과 삼봉산 사이 해발 300m 갈바람 샛바람 불어오는 능선에 선 마을이다. 500년 수령의 마을 수호신 느티나무는 사시사철 나그네 쉼터가 돼준다. 이 마을은 1497년 신씨, 1537년 서씨, 1598년 창씨가 거주했으며 그 후 이씨 반씨 정씨가 들어와 살았다. 한때 60여호의 마을을 형성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20여호가 살고 있다. 게를 닮았다 하여 게제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현촌마을에서 2.7㎞, 1시간 40분 만에 샘터가 있는 주차장에 닿는다.
샘은 등산객 외에도 인근 망운암을 찾는 신도들과 나들이 온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생명의 샘이다. 오가는 길손 외에도 산새 들새 산짐승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 가물어도 끊이지 않는다.
좌측 길 끝 700m에 망운사다. 고려시대에 창건됐다는 설이 있다. 조선 후기 1799년 편찬된 범우고에 망운암이 나온다. 지금은 망운사로 사찰명이 바뀌었다.
다시 망운산으로 오르는 600m 구간에는 철쭉이 지천이다. 지금은 꽃이 지고 초록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망운산(785m) 정상석에 ‘남해안의 중심, 보물섬 남해’라고 새긴 글이 인상적이다. 취재팀 김윤관 기자가 속한 남해지역 산악회에서 설치하고 새긴 것이라고 한다.
비온 뒷 날, 탁 트인 시야는 저 멀리 지리산도 가깝게 데려다 준다. 정상에서 조망은 압권이다. 멀리 지리산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 백운산, 억불봉, 금오산, 금산, 호구산, 괴음산, 가깝게 이순신대교 노량·남해대교 남해의 섬들…. 국립공원 4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남해안의 중심, 아름다운 광경이다. 망운산 그 이름 백운산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조선의 문신 약천 남구만이 이 산에 올랐다. 1679년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다 역풍을 맞은 그는 남해에 유배된 뒤 이 산에 올라 감탄하며 ‘제영등망운산’ 시문을 남겼다. ‘넝쿨을 휘어잡고 바위를 올라 산정에 오르니/ 과연 망운이란 이름이 잘 붙여졌음을 알겠구나/백성들이 성은을 입어 요민(饒民, 살림이 넉넉한 백성)못지않게 행복한 것을 보니/이 천한 몸도 몹시 고향 땅이 그리워진다’
정상주변에는 수십명이 앉을수 있는 너럭바위가 있어 지역민들의 직장이나 동호회의 단체야유회 힐링처로 인기다. 관대봉의 범상치 않은 형상 뒤로 남해읍이 내려다 보인다. 남해를 가슴에 보듬고 있는 형국이다. 관대봉으로 가려면 거칠고 급한 암산을 내려섰다가 봉우리로 올라야한다. 이 봉우리는 낫가리를 켜켜히 쌓아올린 것처럼 우뚝해 마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듯한 잔재미가 있다. 중간에 사진을 찍을수 있는 포인트가 곳곳에 있지만 위험한 곳이 있어 안전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관대봉은 남해읍과 가까워 군민들에게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암산. 정상에 여러 개의 거대한 바위들이 제각기 다른 형상을 보여주며 자신을 뽐낸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암산이 있는 곳이 드문데 어찌 보면 이 산은 남해인들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더 아끼고 보호해야할 소중한 자연이다. 산 아래 다랭이 논에 모내기를 위해 물이 가득 채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맥은 관대봉에서 고도를 낮춰 평현마을로 향한다. 중간 갈림길에서는 오른쪽이 평현마을 방향지맥이다. 왼쪽 길은 남해여중·신기마을로 간다. 이곳에는 편백나무가 군락을 이뤄 남해군에서 시민들을 위해 산림욕장을 조성해 놓았다. 지맥 중간에 오름길이 몇 있어도 주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평현고개까지 고도를 최대한 낮춘다.
최창민·김윤관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남해군 고현면 오곡리 19번국도 남해대로 상 가청곡교차로가 2코스 출발지이다. 새진주식당 주변 공터에 주차가 가능하다.
조선지형도에는 오곡리에 가청현으로 표기돼 있다. 임진왜란 전 군사지도에 육지를 푸르게 칠했다고 해서 가청곡, 또는 왜군들이 갇혔다 해 갇힌 곡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러나 이는 바다가 깊숙이 들어간 갇힌 고개가 와전돼 가청이가 됐다고 한다.
봄비가 그친 새아침, 부서지는 햇살, 산에는 야생초가 양탄자처럼 깔려있다. 싱그러운 대지의 초목이 탐방객을 반긴다.
큰 쉼 호흡 한번으로 “잘 있었나, 산을 만나려 다시 왔다” 인사를 건넨다.
삼봉산 뿌리에는 사람살이의 흔적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봄 향기 가득 머금은 ‘땅두릅’을 수확하지 않고 방치한 것은 의외다.
농촌 수익사업으로 시작한 대규모 농작물경작인데 초여름 이 시기 허리춤까지 자라도록 수확이 안된 것은 무슨 사연인지…, 타산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린 듯했다. 살짝 데쳐서 먹는 대표적인 산나물이다. 10여분을 걸어야 두릅밭을 벗어날 수 있다.
삼봉산 오름길, 지맥 주변에는 땅의 경계를 표시한 돌담이 줄지어 있어 땅의 주인이 따로 있음을 알려준다. 지맥는 삼봉산에서 솟아 사방의 전망을 보여준다. 정상에서 300m를 되돌아와 갈림길에서 현촌마을로 떨어진다. 현촌마을은 망운산과 삼봉산 사이 해발 300m 갈바람 샛바람 불어오는 능선에 선 마을이다. 500년 수령의 마을 수호신 느티나무는 사시사철 나그네 쉼터가 돼준다. 이 마을은 1497년 신씨, 1537년 서씨, 1598년 창씨가 거주했으며 그 후 이씨 반씨 정씨가 들어와 살았다. 한때 60여호의 마을을 형성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20여호가 살고 있다. 게를 닮았다 하여 게제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산 속에는 지맥이 간직한 야생의 아름다움이 지천이다.
강렬한 찔레꽃향이 코를 자극하고, 발밑에는 별을 닮은 때죽나무꽃이 화이트 카펫을 깔았으며 옆에는 단풍취가 밭을 이룬다.
현촌마을과 100m가 차이가 나는 411m 봉우리를 지난다.
남해 최고봉 망운산의 높은 경사도에 호흡이 가빠진다. 그나마 급경사에는 나무데크가 설치돼 있어 숨을 고를 수 있다.
현촌마을에서 2.7㎞, 1시간 40분 만에 샘터가 있는 주차장에 닿는다.
샘은 등산객 외에도 인근 망운암을 찾는 신도들과 나들이 온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생명의 샘이다. 오가는 길손 외에도 산새 들새 산짐승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 가물어도 끊이지 않는다.
좌측 길 끝 700m에 망운사다. 고려시대에 창건됐다는 설이 있다. 조선 후기 1799년 편찬된 범우고에 망운암이 나온다. 지금은 망운사로 사찰명이 바뀌었다.
다시 망운산으로 오르는 600m 구간에는 철쭉이 지천이다. 지금은 꽃이 지고 초록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망운산(785m) 정상석에 ‘남해안의 중심, 보물섬 남해’라고 새긴 글이 인상적이다. 취재팀 김윤관 기자가 속한 남해지역 산악회에서 설치하고 새긴 것이라고 한다.
비온 뒷 날, 탁 트인 시야는 저 멀리 지리산도 가깝게 데려다 준다. 정상에서 조망은 압권이다. 멀리 지리산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 백운산, 억불봉, 금오산, 금산, 호구산, 괴음산, 가깝게 이순신대교 노량·남해대교 남해의 섬들…. 국립공원 4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남해안의 중심, 아름다운 광경이다. 망운산 그 이름 백운산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조선의 문신 약천 남구만이 이 산에 올랐다. 1679년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다 역풍을 맞은 그는 남해에 유배된 뒤 이 산에 올라 감탄하며 ‘제영등망운산’ 시문을 남겼다. ‘넝쿨을 휘어잡고 바위를 올라 산정에 오르니/ 과연 망운이란 이름이 잘 붙여졌음을 알겠구나/백성들이 성은을 입어 요민(饒民, 살림이 넉넉한 백성)못지않게 행복한 것을 보니/이 천한 몸도 몹시 고향 땅이 그리워진다’
정상주변에는 수십명이 앉을수 있는 너럭바위가 있어 지역민들의 직장이나 동호회의 단체야유회 힐링처로 인기다. 관대봉의 범상치 않은 형상 뒤로 남해읍이 내려다 보인다. 남해를 가슴에 보듬고 있는 형국이다. 관대봉으로 가려면 거칠고 급한 암산을 내려섰다가 봉우리로 올라야한다. 이 봉우리는 낫가리를 켜켜히 쌓아올린 것처럼 우뚝해 마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듯한 잔재미가 있다. 중간에 사진을 찍을수 있는 포인트가 곳곳에 있지만 위험한 곳이 있어 안전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관대봉은 남해읍과 가까워 군민들에게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암산. 정상에 여러 개의 거대한 바위들이 제각기 다른 형상을 보여주며 자신을 뽐낸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암산이 있는 곳이 드문데 어찌 보면 이 산은 남해인들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더 아끼고 보호해야할 소중한 자연이다. 산 아래 다랭이 논에 모내기를 위해 물이 가득 채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맥은 관대봉에서 고도를 낮춰 평현마을로 향한다. 중간 갈림길에서는 오른쪽이 평현마을 방향지맥이다. 왼쪽 길은 남해여중·신기마을로 간다. 이곳에는 편백나무가 군락을 이뤄 남해군에서 시민들을 위해 산림욕장을 조성해 놓았다. 지맥 중간에 오름길이 몇 있어도 주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평현고개까지 고도를 최대한 낮춘다.
최창민·김윤관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