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42]소매물도 등대섬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42]소매물도 등대섬
  • 경남일보
  • 승인 2023.05.2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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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 열리는 신비로운 등대섬으로 떠나자
◇세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소매물도 탐방

두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소매물도 탐방에 성공했다. 너울이 조금만 심해도 소매물도 접안과 등대섬 탐방이 어려워 지금까지 소매물도와 등대섬 트레킹(걷기 여행)을 하지 못하고 3번째 만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진주산오름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진주에서 6시 30분에 출발해 거제 저구항에서 8시 30분에 출발하는 소매물도행 배에 탑승했다. 지난번에는 바람의 패악질로 인해 행선지를 매물도로 급선회한 적이 있었던지라 40분가량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노심초사했다. 너울로 인해 배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릴 때마다 이번에도 못 가게 되나 하는 조바심 끝에 소매물도 선착장에 닿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소매물도 선착장-(남측 등산로)가익도 전망대-폐교-쉼터-망태봉 갈림길-관세역사관-망태봉전망대-공룡바위전망대-등대섬전망대-열목개-항로표지관리소-소매물도 등대-열목개-(남측 등산로)망태봉 갈림길-(동측 등산로)매물도전망대-동백나무·광나무 군락지-남매바위-소매물도 선착장.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순환하는 코스를 잡아 원점 회귀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고 한 앙드레 말로의 말처럼 소매물도에 닿자마자 필자의 몸과 마음이 섬에 동화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가파른 길인데도 발걸음은 너울처럼 리듬을 타고 있고, 길섶 풀꽃들은 오랫동안 사귄 친구처럼 나에게 웃음을 건넸다. 숨이 차오를 즈음, 가익도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닿았다. 밀물과 썰물에 맞춰 5개 혹은 6개의 섬으로 보여 오륙도라고 불리기도 하는 가익도는 가마우지의 쉼터인 작은 섬이다. 가마우지의 배설물 때문에 섬이 완전 하얀색이었다.

 
꽃잎이 떨어져 있는 동백숲길.

 

◇천혜의 절경 등대섬

몇 걸음 더 올라가자 폐교인 매물도초등학교 소매물도분교 입구에, 1969년 개교하여 졸업생 131명을 배출하고 1996년 3월 1일에 폐교되었다고 적힌 교적비가 서 있었다. 학교엔 학생들 대신 동백나무 울타리, 후박나무와 섬팽나무가 빈 교정을 지키고 있었다.

폐교에서 50m 정도 올라가자 쉼터가 나오고 다시 몇 걸음 올라가자 망태봉으로 가는 데크길(툇마루 산책길)이 나타났다. 가파른 길 양쪽에 핀 동백꽃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닿은 망태봉 정상에는 하얀 관세역사관이 필자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남해안 일대의 밀수를 감시하기 위해 세웠지만 지금은 대국민 홍보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소매물도에서 바라본 등대섬의 옆모습.
등대에서 바라본 해안 절벽.
관세역사관을 지나 망태봉전망대에 닿자, 꿈에 그리던 등대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말 환상적인 풍경이다. 한참이나 바라보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자 공룡전망대가 아슬아슬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니 공룡의 머리처럼 생긴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10분 정도 내려오자 등대섬을 가까운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등대섬전망대가 나타났다. 깎아지른 절벽으로 에워싸인 등대섬은 마치 요새처럼 보였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도 탐방객들은 탄성을 지르며 등대섬의 비경을 넋 놓은 채 바라보았다.
 
소매물도에서 등대섬으로 건너가는 탐방객.
열목개 입구에서 점심을 먹은 뒤, 바다가 길을 열어 줄 때까지 3시간 가까이 기다리는 동안 해안 절벽이 만들어 놓은 바위 의자에 앉아 물멍, 너울멍을 했다. 기아나의 ‘악마의 섬’에서 이안류를 이용해 탈출하고 자유를 찾은 파피용의 모습이 떠올랐다. 복수와 자유를 위해 탈출했지만 복수심에 찬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구속당하고 있음을 안 저자 ‘앙리 샤리에르’는 가장 아름다운 복수와 영원한 자유를 얻기 위해 자신을 기소한 검사와 거짓 증언을 한 사람들을 용서했다. 용서란 말을 떠올리자 처음엔 눈으로만 다가오던 너울이 귀와 코, 혀와 피부로 느껴지면서 마침내 그 너울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필자도 일어나 너울이 열어준 길을 따라 등대섬으로 건너갔다.


 
남매바위 중 누이바위.
◇아름다운 섬이 만든 슬픈 남매바위 전설

미끄러운 몽돌길을 건너 등대섬에 도착한 뒤, 작은 화장실과 항로표지관리소를 지나 10여 분 정도 올라가자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등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드센 바닷바람이 늦게 찾아온 필자를 꾸짖는 듯 옷깃을 심하게 흔들어 댔다. 등대에서 바라본 소매물도는 마치 거대한 공룡이 바다를 향해 입수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려다보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잘 빚은 조각품처럼 아름다웠다.

등대섬에서 되돌아와 망태봉 갈림길에서 남매바위 방향으로 가는 순환코스를 선택했다. 광나무와 동백나무 군락지에 난 둘레길은 좀 가팔랐지만 무척 서정적이었다. 건너편의 매물도가 형의 모습으로 의젓하게 소매물도를 지켜주는 것처럼 보였다. 동백숲길을 걸어오자 길가에 큰 바위 하나가 떡 버티고 있었다. 남매바위 중 오빠바위로, 누이바위는 30m 정도 아래쪽 바닷가에 있었다.

매물도에 사는 권 서방 부부가 쌍둥이 남매를 키웠는데 쌍둥이 중 하나가 단명하다는 속설이 있어 아들을 위해 딸을 소매물도에 버리고 목숨은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아들이 건너편 무인도인 소매물도에서 연기가 나는 걸 보고 찾아가 보니 한 처녀가 움막에서 살고 있었다. 마음이 끌려 그 처녀와 정을 통하려는 순간, 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벼락이 떨어져 천륜을 어긴 남매를 돌로 변하게 했다고 한다. 섬사람들의 혈족 간의 상피(相避)를 경계하기 위해 엮어낸 슬픈 전설이 아름다운 소매물도에도 숨어있었다. 슬픈 남매바위 전설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너울이 배의 접안을 방해했나 보다. 하늘에서나마 두 남매가 행복하게 잘 살아가길 기원하며 소매물도를 떠나왔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등대섬의 등대.
소매물도 선착장에서 폐교로 올라가는 길.
망태봉전망대에서 바라본 등대섬.
매물도 관세역사관.
폐교로 남은 소매물도 분교.
남매바위 중 오빠바위.
등대섬에서 바라본 공룡을 닮은 소매물도.
가익도전망대에서 바라본 가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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