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솥단지에서 배우는 분배
[경일춘추]솥단지에서 배우는 분배
  • 경남일보
  • 승인 2023.05.1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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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순 뜻있는 도서출판 대표
이지순 뜻있는 도서출판 대표


사천에 사는 최인태 막걸리문화촌장을 안지 제법 세월이 흘렀다. 그 인연으로 사천에 전통주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그 배움의 시간들 갈피마다 촌장의 귀한 말들이 있었다. 촌장의 지도대로 술을 빚기 위해 쌀을 씻었다. 천 번을 씻어 오라해서 손톱도 깎고 오래 씻었다.

쌀을 부어 놓고 보면 괜히 경건해졌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샤워도 하고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씻었다. 전통주를 만드는 시간마다 막걸리를 좋아했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천 번을 씻으며 만 가지 번뇌는 흘러 보내고 술을 빚으러 다녔다. 쌀을 씻어 두 시간 동안 담갔다가 건져서 사천으로 가면 다시 30분 찌고 찜을 들이고 식히고 기존에 미리 빚어둔 밑술과 혼화 작업을 하여 술을 담는다. 물론 진달래나 솔잎이나 연꽃 등속을 넣은 혼합주도 도전해도 되지만 모든 것의 완성은 기본이 잘돼야 한다는 촌장의 의견에 따라 오직 이양주만 빚었다. 전통주는 술을 빚는 횟수에 따라 단양주, 이양주, 삼양주 등으로 나뉘는데 이양주 이상의 술은 맛과 향이 더 깊고 좋다고 한다.

요즘은 쌀을 찔 때 찜기가 다양하게 나오지만 옛날엔 무쇠 솥을 사용했다. 솥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민족이 사용했던 주방용기로 무쇠 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 이후부터이다. 그 전엔 토기나 돌로 만들었다고 한다.

주역의 정괘(鼎卦) 중에 ‘솥단지의 배가 불룩한 것은 좀 더 많은 음식을 담아, 제사에 참여한 백성들에게 골고루 음식을 나눠주고자 하는 뜻을 상징한다. 이로써 풍족한 생산과 공평한 분배의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다짐하는 것이다. 또한 세 개의 발과 두 개의 귀가 달린 것은 군왕이 자신의 권력과 재물을 여러 백성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세 개의 발은 균형을 말함이고 두 개의 귀는 백성들의 말을 경청하라는 뜻이 아닌가.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불평등과 함께 깊어지는 빈부격차를 볼 때마다 이 솥단지가 떠오른다. 세 개의 발 중 하나라도 없으면, 솥은 바로 설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남아있는 솥단지는 배는 불룩하지만 세 개의 발은 사라졌다. 불을 때는 아궁이에 걸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균형은 깨졌지만, 많은 밥과 술을 담으려 함이 아닌가.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가 되는 부와 음식이 한곳으로 쏠리게 되면 공동체가 무너지고 마는 게 세상 이치 인 것이다. 오랜만에 술을 빚어 누구나 할 것 없이 공평하게 나누어 마시는 한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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