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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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3.05.1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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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김만중문학상 받은 김유섭의 통절한 시 해석(2)
김유섭 시인이 새롭게 해석한 두 번째 시는 ‘초혼’이다. 초혼은 죽은이 영혼을 부른다는 뜻이다. 시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고등학교만 나오면 다 아는 시가 이 작품이다. 이 시는 한 개의 연은 4행이고 5연이 이어지는 절규이다. 총 20행의 시다. 1개의 연이 4행이니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초혼 招魂 전문)

사람이 죽은 직후 영혼을 불러들여 죽은 사람을 살려 내려는 간절한 소망이 의례화 된 것을 ‘고복의식’ 또는 초혼이라 한다. 사람이 죽은 직후 그가 생시에 입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지붕 위나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아무개 동네 아무개 복(復)이라고 죽은이 이름을 세 번 부르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죽음의 길로 가지 말고 돌아오라는 뜻이다.

또한 왕이 죽으면 내시가 궁궐 지붕 위에 올라가 곤룡포를 세 번 휘두르며 ‘상위복’하고 외친다. 상위는 임금이다. 김소월이 누군가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며 살아 돌아오라고 강렬하게 열망하는 시라는 것을 제목으로 알 수 있다.

1연에서 이름을 네 번 부르지만 실명이 아니고 죽어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므로 그 이름은 왕이다. 왕조의 멸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나라가 없어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라는 것은 죽은 왕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왕으로 부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중에 있는 말 한 마디 못했다는 것은 왕의 급살을 의미한다.

1925년 ‘진달래꽃’이 나오기 전에 김소월이 목격한 왕의 죽음은 고종이다. 주권회복을 위해 1918년 독일 등 망명을 시도했으나 총독부에 발각이 되고 결국 친일파들에게 1919년 1월 21일 독살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는 고종이 죽은 뒤 세월이 흐른 어느 시점에 초혼 의례 형식으로 쓴 시라고 할 수 있다.

3연의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에서 사슴은 삼국시대부터 왕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사슴의 무리는 왕조를 의미하고 그 열조의 쇠망은 서산에 걸린 붉은 해의 상황이니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를 보자. 나 김소월은 죽는 순간까지 정조를 지키며 조선의 주권 회복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죽을 것이라는 강렬한 열망의 결연함이다. 이런 시를 두고 “임의 부재에 대한 슬픔과 절규”라든가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안타까움”, “삶과 죽음 사이의 절망적 거리감”이라는 일상적 애정의 표현 수준으로 머문다는 것은 김소월의 ‘창작의 진실’에 한참은 멀리 떨어져 있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초혼’이 발표된지 100년이나 되었다. 시인은 “왕이 승하했다” “독살이다” “나라의 주권이 넘어 갔다” “내 시가 제대로 읽히기까지” “나는 한결같이 나라 부르는 초혼이다” “지붕 위에서 언덕에서 산속에서 부르노라”고 외치는 듯하다. 시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도 이 ‘초혼’ 앞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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