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꽃(이문재)
파가 자라는 이유는
오직 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파가 커갈수록
하얀 파꽃 둥글수록
파는 제 속을 잘 비워내는 것이다
꼿꼿하게 홀로 선 파는 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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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넓은 우리 집 아래채에 텃밭이 있었어요. 거기엔 양념에 쓰일 마늘과 파와 고추가 자랐고요. 노는 담벼락에는 오이 덩굴도 있었지요. 살진 햇발 늘어지는 늦은 봄이었던 것 같아요. 파꽃이 오종종 피었던 것은요. 건강한 줄기를 보면서도 어쩐지 슬펐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특유의 매운 냄새를 참으면서 파꽃 앞에 쪼그려 있던 기억은 오래된 기억이면서 언제나 오늘 일 같아요. 필 때가 절정인 다른 꽃들에 비해 파꽃은 생의 막바지에서 피어요. 꽃이 피면 대가 질겨지고요. 더 이상 먹거리로서의 소용이 없어져요. 자신의 속을 긁어 대를 세우고 흰머리를 올리는 동안 마음은 질겨지고 비워지면서 수명을 다하는 거죠. 그러고는 까만 씨를 내어주죠. 다음 해 파종을 위해 엄마는 씨를 골랐어요. 파꽃씨를 고르면서 엄마는 당신의 생이 파꽃과 닮았다는 걸 알았을까요. 대가족의 매무새를 챙기느라 짓물러진 속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지, 제 속을 잘 비우고 꼿꼿하게 선 파에서 엄마 모습이 보여서 슬펐나 봅니다. 시골길을 나서니 먼 풍경처럼 파꽃이 피었더군요. 꽃대가 가지런하고 명랑하게 보였어요.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엄마는 이제 다른 세상에서 파꽃씨를 고르고 있으려나요. 파에서 나는 알싸함에 눈물이 고입니다. 엄마가 봄날처럼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는 듯합니다.
통영문학상운영위원장
파가 자라는 이유는
오직 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파가 커갈수록
하얀 파꽃 둥글수록
꼿꼿하게 홀로 선 파는 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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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넓은 우리 집 아래채에 텃밭이 있었어요. 거기엔 양념에 쓰일 마늘과 파와 고추가 자랐고요. 노는 담벼락에는 오이 덩굴도 있었지요. 살진 햇발 늘어지는 늦은 봄이었던 것 같아요. 파꽃이 오종종 피었던 것은요. 건강한 줄기를 보면서도 어쩐지 슬펐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특유의 매운 냄새를 참으면서 파꽃 앞에 쪼그려 있던 기억은 오래된 기억이면서 언제나 오늘 일 같아요. 필 때가 절정인 다른 꽃들에 비해 파꽃은 생의 막바지에서 피어요. 꽃이 피면 대가 질겨지고요. 더 이상 먹거리로서의 소용이 없어져요. 자신의 속을 긁어 대를 세우고 흰머리를 올리는 동안 마음은 질겨지고 비워지면서 수명을 다하는 거죠. 그러고는 까만 씨를 내어주죠. 다음 해 파종을 위해 엄마는 씨를 골랐어요. 파꽃씨를 고르면서 엄마는 당신의 생이 파꽃과 닮았다는 걸 알았을까요. 대가족의 매무새를 챙기느라 짓물러진 속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지, 제 속을 잘 비우고 꼿꼿하게 선 파에서 엄마 모습이 보여서 슬펐나 봅니다. 시골길을 나서니 먼 풍경처럼 파꽃이 피었더군요. 꽃대가 가지런하고 명랑하게 보였어요.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엄마는 이제 다른 세상에서 파꽃씨를 고르고 있으려나요. 파에서 나는 알싸함에 눈물이 고입니다. 엄마가 봄날처럼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는 듯합니다.
통영문학상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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