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92) 헛나이테(양진기)
강재남의 포엠산책(92) 헛나이테(양진기)
  • 경남일보
  • 승인 2023.03.2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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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나이테(양진기)

 

‘낮술 환영’에 들어선 목포홍탁집

아줌마가 연분홍 홍어살을 저미고 있네

그녀의 속살도 한때는 저리 뽀žR을 거야

서비스로 애탕을 내오는 소매를 잡고

손님도 없는데 한 잔 허요

막걸리를 따라주자 넙죽 잘도 마시네

한 잔 들어가자 오래된 술친구처럼

묻지도 않은 딸 자랑에

젊은 시절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네

곰살궂은 친구가 뭔 띠요 누님 같은디

민증 까까?

옥신각신하다가 민증을 보여주네

또래라 생각했던 아줌마

일곱 살이나 어렸네

모진 풍파로 뿌리가 몇 번이나 흔들렸을까

근심으로 푸른 잎을 얼마나 떨구었을까

끓던 애탕이 식어 거북등이 되고 있네

오빠들, 또 오셔

활짝 웃자 눈가에 자글한 실금들

번졌다가 사라지는 둥근 나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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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나 벌레로 재해를 입은 나무가 규칙적인 나이테를 만들지 못하고 한해에 두 개 이상 나이테를 만드는 것을 헛나이테라고 해요. 뜻밖의 재난으로 만들어진 나이테는 안팎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요. 사람도 이와 다를 게 없어요. 얼굴에는 한 사람이 걸어온 일생이 쓰여있어요. 스스로가 원하는 일이 아닌 길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비애를 생각합니다. 누군들 이런 생을 원했을까요. 우리에게는 어쩌지 못하는 삶도 있습니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허름한 가게에서 술잔을 건네며 주고받는 농이 막걸리처럼 익었어요. ‘낮술 환영’에서 만난 아주머니를 보면서 헛나이테의 속성을 그린 화자의 농에서 연민의 마음이 읽혀요. 모진 풍파에 몇 번이나 흔들렸을 뿌리를, 근심으로 떨구었을 잎으로, 사람의 나이테를 그립니다. 눈가에 자글자글한 실금이 고단함을 말해주네요. 그럼에도 엄마는 그런 것 같아요. 생의 질곡에서도 자식을 생각하면 미소가 먼저 번지는 것요. 비바람이 강해도, 생채기 난 마음에서 피가 흘러도, 엄마여서 괜찮아야 하는 것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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