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대간의 직권남용이 나라를 망치다
[경일포럼]대간의 직권남용이 나라를 망치다
  • 경남일보
  • 승인 2023.03.2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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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처음에는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낯설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지만 설마하니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할 검찰이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검찰과 비슷한 정부기구가 있었다. 바로 사헌부와 사간원이다. 이들이 있어서 나라는 건강했다. 사헌부는 관료들의 비행을 감찰하고 탄핵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사간원은 왕에게 끊임없이 충고하고, 간언을 하는 일이 맡은 소임이었다. 이들 두 군데를 합하여 ‘대간(臺諫)’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 기구에 속한 관리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대간제도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독립성이 제일 중요하다. 물론 총괄하는 대사헌, 대사간이 있긴 했지만 실제 모든 대간은 각자의 독립된 판단에 따라 활동했다. 특정한 문제에 대해 모든 대간들의 합의를 거치는 공의(公議)라는 논의과정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대간은 조직 내의 간섭에서 자유로웠다. 대간은 위계질서에 의한 관료사회의 일원이라기 보다 자신을 사대부 공론의 대변자요, 유교 이념의 수호자로 자처했다. 서강대학교 정두희 교수는 이런 제도가 잘 시행될 때는 대간이 대신들을 혹은 왕권을 견제했다고 한다.

그동안 훌륭한 대간들도 많았지만 권력자의 지시에 의해 혹은 의중을 살피면서 행동하는 일도 있었다. 고종 때 자신을 관왕(關王)의 신딸(神女)이라고 하면서 궁궐을 출입하며 권세를 부리던 무녀(巫女)가 있었는데 의령 지정면 입산마을 출신의 수파 안효제가 1893년, 상소를 올려 요망한 무녀를 죽이라고 했다. 이에 대응해 무녀의 수양아들인 이유인, 민영주는 송정섭 등에게 사주해 삼사와 성균관 유생들이 소를 올려 수파에게 벌을 주라고 했다. 이 소를 받은 고종은 수파를 추자도로 유배보냈다. 사색당파가 자유롭게 활동하는 사회에서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고, 당파로부터 중립을 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치권의 간섭과 요구도 많았지만 대간 중에는 스스로 앞장서서 특정 당파를 위해 활동한 이들도 있었다.

비록 제도는 많이 달라졌지만 지금도 정치권과의 관계는 마찬가지이다. 진실은 재판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지금 거론되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직권남용에 의한 감찰 중단만 해도 걱정스럽다. 2017년 10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은 당시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던 유재수 전 부시장이 유관 업체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금융위에 자체 감찰을 맡기면 감찰 실효성 담보가 어렵다’고 판단한 조 전 장관은 특감반 감찰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정치권 구명 청탁’에 의해 조 전 장관은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중단하고, 사건을 금융위로 넘겼다고 한다. 결국 유 전 부시장은 금융위에서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채널에이 사건 감찰 방해 의혹’도 비슷하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 재직할 때였다. 문화방송(MBC)의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보도 뒤 2020년 4월 2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수신자로 ‘관련 진상 확인 뒤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 뒤 한동수 당시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윤 전 총장에게 수차례 ‘감찰부가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보고했지만 윤 전 총장은 감찰부에게 조사하지 말라고 하면서 수사권이 없는 대검 인권부에 진상확인을 지시해 결국 감찰부의 감찰은 중단됐다고 한다. 감찰대상자였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다.

조선시대에도 대간의 중립성, 독립성이 훼손되었을 때마다 정치적 계산에 의해 상대 당파를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대간에 의해 유지되었던 권력 구조의 균형이 파괴됐다. 점차 조선왕조의 정치는 균형을 잃었고, 나라는 병들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 거론되는 전직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직권남용에 의한 감찰 중단이 사실이라면 국민이 나라를 걱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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