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타락을 넘어서는 방법
[경일춘추]타락을 넘어서는 방법
  • 경남일보
  • 승인 2023.03.1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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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도립 남해대학교 교수
김은영 도립 남해대학교 교수


“남이 나를 저버리느니 차라리 내 눈이 나를 저버린다.” 조선 후기 중인 출신의 애꾸눈이 화가 최북(崔北, 1712~?). 신분 높은 세도가가 위세를 앞세워 그림을 그리라고 강요하자 이 말을 내뱉고는 바로 송곳자루를 들어 제 오른쪽 눈을 찔러 버렸다. 일평생 ‘광생(狂生)’이라 불리며 세간의 손가락질을 당하는 처지였으나 권력자의 서슬에 눌려 자기 그림을 더럽히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지금 보아도 현대적인 그의 그림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은 과연 당대 여느 화가와 견줄 수 없는 독창성을 자랑한다. 거센 풍설에 휜 나뭇가지가 마치 뻣뻣한 겨울바람에 온몸 움츠리고 귀가하는 노인의 몸뚱이처럼 힘겨운 듯, 그러나 당당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부분부분 붓을 사용하지 않고 손끝으로 그린 지두화(指頭畵)는 유유자적 중국 화풍의 모방에만 급급했던 동시대 화가들의 그림과 비교할 때 가히 파격이라 할 만하다.

평생 환쟁이라 불리며 멸시당했던, 이 작달막한 애꾸눈이 화가는 결국 열흘이나 굶주린 끝에 어렵사리 그림 한 폭 판 돈으로 술을 사 마시고는 눈구덩이에 쓰러져 얼어 죽고 만다.

18세기 화가 최북과 20세기의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이 평생 두려워하며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김수영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자디잔 일상이 쌓아올린 무덤 속에 파묻혀 타협하고 타락하는 일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 김수영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징집되었다가 포로로 붙잡혀 3년 동안 거제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냈다. 반공포로들의 시체가 밤마다 변소 간에 무참히 버려지던 인권부재의 생지옥에서, 그가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행동은 바로 자신의 생니를 뽑는 일이었다. 이를 뺄 때 느끼는 통증이 자신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감각이었으므로, 하루에 한 개씩 생니를 뽑고 나날이 없어지는 치아를 세면서, 그는 자기 시의 구심점이 추악한 현실에 마비되지 않고 타락하지 않는 데 있음을 확인하고자 했다. 최북이 눈을 찔러가며 지키고자 하였던 것, 김수영이 생니를 뽑아가며 확인하고자 했던 것, 그것은 결국 자신들을 무력화시키는 타협의 얼굴에 침을 뱉고 스스로를 탈주시키려는 신념이었다. 한순간도 타협하거나 타락하지 않겠다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매 순간 깨어있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한순간도 의식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려는 마비된 족속,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참으로 눈과 생니가 뽑히는 통증으로 다가오는 교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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