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송나라로 떠나는 교방음식 기행
[경일춘추]송나라로 떠나는 교방음식 기행
  • 경남일보
  • 승인 2023.03.0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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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양고기 버거, 연잎 만두, 자소(붉은 깻잎)를 넣은 생선, 철갑상어알 젓갈, 잉어식해, 과일을 설탕에 졸인 탕후루, 고기야채탕. 900년 전,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은 불야성의 도시였다.

북송 시대의 풍물을 그린 ‘동경몽화록’에는 놀랄 만큼 다양한 송나라 음식들이 등장한다. 당에 이어 중국 역사상 가장 세련된 문화를 꽃피운 시기다. 요의 침공으로 남쪽으로 쫓겨 가기 전은 북송, 이후는 남송시대다. 요를 물리친 고려의 주역은 진주 강씨 강민첨 장군이었고 요의 적진으로 들어가 장렬하게 전사한 하공진 장군도 진주 토박이다. 승산리 허씨 가문도 중시조가 개성의 벼슬아치 허웅(許邕)이다. 교방 제도는 고려시대 송에서 처음 도입됐다. 고려가 이를 답습한 것은 팔관회와 연등회 같은 국가 잔치 때문이었다. 송의 악사가 고려에 머물면서 기녀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열린 팔관회는 단순한 불교행사가 아니었다. 사흘에 걸쳐 전국에서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지방 호족들도 상경해 의무적으로 왕에게 예를 갖춰야 했다.

전 세계 무역상들이 몰려든 예성강 벽란도는 고려의 경제특구였다. 코리아라는 이름이 알려진 것도 이때부터다. 고려는 은둔의 왕국 조선보다 훨씬 개방적인 나라였다. 실크로드를 따라 건너온 이슬람 회족(回族)들도 고려 왕실과 접촉했다. 남녀의 방탕한 애정 행각을 그린 고려가요 ‘만전춘’은 ‘만두가게에 만두를 사러 갔더니 회족 아비가 손목을 잡았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고려는 동서양의 음식문화가 섞인 시기였다. 고려와 교류했던 나라는 대식국(아라비아), 마팔국(인도), 섬라곡국(태국), 교지국(베트남) 등 다양했다.

교방음식의 원류 역시 폐쇄적인 조선의 궁중음식이 아닌 고려의 팔관회였고, 더 멀리는 송나라의 연회 음식이었다. 교방은 당나라에서 시작된 문화다. 통일신라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문헌은 발견되지 않았다. 당을 계승한 송의 음식은 서·동이 만난 퓨전이었다.

진주 사대부들의 술자리 예법인 6배 5미(술은 여섯 번 돌리고 안주는 다섯 번에 걸쳐 내는 예법)도 송에서 건너온 문화다.

송과 고려의 교방 음식은 진주 토산물을 이용해 변천과 정착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역사, 사회, 문화에 걸쳐 보다 탄탄한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것이 교방문화의 본산지로서 진주의 위상을 지켜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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