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호구(虎口)면 어때”
[경일칼럼]“호구(虎口)면 어때”
  • 경남일보
  • 승인 2023.03.0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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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욱 김취열기념의료재단 이사장
김태욱 김취열기념의료재단 이사장


근로자 10명 중 4명이 근로소득 면세자인 대한민국에 살면서 성실납세자는 곧 ‘호구인증(虎口認證)’이라고 한다. ‘어수룩하여 만만하고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호구는, 한자어로 표기하면 ‘호랑이 입’이라해 도무지 어감이 맞지 않다. 바둑에서 유래된 바, 호구, 즉 호랑이 입 모양의 바둑돌 위치에 느닷없이 상대편이 돌을 두게 되면 그 즉시 ‘단수’가 돼 그 돌은 폐석이 된다. 아무생각 없이 두다보면 필패이다. 그러니 호구에 돌을 두는 상대방은 그야말로 ‘호구’이다. 비슷한 말로 ‘호갱’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고 ‘소비자는 봉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국회입법조사처 등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2020년 기준, 37.2%의 근로소득자가 면세자이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있다는 철칙을 정부가 어김없이 지키고 있을 것이라 믿는 필자도 틀림없이 세금을 내야 하는 호구중의 한 명이다. 같이 조사된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의 예를 들여다보면, 근로자면서 면세자 비율은 약 14%에서 29%에 걸쳐있다. 모든 근로소득자가 원천징세를 한 이후 연말정산때에 돌려받는 비중은 여러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근로소득자라면 누구나 세금을 내기는 한다. 이 때 돌려받은 금액에 따라 결과적으로 세금을 부담하지 않은 수가 10명 중 4명이라는 의미이겠다. 이 자료는 누가 얼마나 많이 내는가가 아닌, 어찌되었던 결과적으로 세금을 부담했는지 아닌지에 관한 자료이다. 이 자료 하나가 얼마나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굳이 파 볼 생각은 없다. 어찌보면 ‘나도 세금을 내고 싶으니 소득을 높이고 싶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누구나 동일한 기회를 접하지 못했을 것이고, 소위 금, 은, 동, 마지막으로 흙수저의 탄생이 나의 뜻은 아니었으니 어느 정도의 불공평은 있을 것이다. 열심히 살고 싶었지만 환경이 전혀 뒷받침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소득이 높은 싱글이었다면 세금을 부담했을 터이지만, 다자녀를 두고 부모님을 모시면서 쓰임새가 늘어난 터에 과표상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게다가 2023년부터 과세표준이 일정 부분 상향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10명중 4명이라는 숫자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근로자 10명중 6명이 나머지 4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전세계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바가 있다. 바로 국민연금일테다. 지금의 노년인구를 청장년층이 떠받치고 있고, 필자도 70세에 접어들면 자식 세대의 부로 나의 연금을 지급받게 될 것이다. 젊음을 불태워 국가사회에 이바지했고, 이제 노년세대에 접어들었으니 그 이바지 덕분으로 “과거보다 더욱 발전한 사회를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가 그 혜택을 보고 있으니” 기존 세대를 봉양해야 함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리라. 저출산과 고령화로 미래 세수 확보는 더더욱 어렵고 결국은 조세 형편상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가. 내가 호구가 되자. 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더 벌어서, 나와 같은 환경을 가지지 못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자. 지금 당장은 또는 이번 삶에서는 세금을 부담하지 않아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겠지만 그 자식 세대는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면서 세금을 부담하게 될 터이니 말이다. 누군가는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 희생을 발판삼아 더 크게 보답을 하리라 믿어야 한다. 끝없이 추락하는 출생률 저하와 언제 종료될지 알 수 없는 급격한 인플레를 경험하는 동시대의 우리는 견뎌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내 주위를 살피고 “너는 왜 세금을 부담안해?”라고 할 것이 아니라, 기꺼이 세금을 부담할 수 있도록 마음을 써봐야 한다. 동시에 정책도 변화해야 한다. 호구면 어때? 나의 삶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만족감 하나로도 나는 호구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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