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공직자들의 얄팍한 언론 플레이
[경일시론]공직자들의 얄팍한 언론 플레이
  • 경남일보
  • 승인 2023.03.0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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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한중기 논설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직자들의 의식세계에서 경남 사천은 사람 살 곳이 못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천 포비아’를 대놓고 외칠 수 있겠나 싶다. 정부가 연내 사천에 우주항공청 설치를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는 와중에 정부 부처 공직자들이 엇박자를 내면서 언론 플레이에 열중하고 있다. 국가우주정책센터가 산·학·연·정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우주항공청 입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전·세종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가장 높게 나왔다는 내용의 자료를 지난 5일 언론에 대대적으로 배포했다. 출입기자들과 해당 지역 언론에서는 이 자료를 그대로 복사하듯 앞 다퉈 보도하면서 한편으로는 공직사회 내부의 술렁이는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는 얄팍한 언론 플레이를 연출했다. 이른바 전문가 집단의 여론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우고 대전·세종권 지역의 여론을 빌어서 사천으로 가지 않고 버텨보겠다는 심산을 엿볼 수 있다.

대통령은 사천 우주항공청을 약속했는데, 이전 대상 기관의 공직자와 연구원을 대상으로 결과가 뻔히 보이는 설문조사를 벌여 딴 소리를 내는 의도는 명백하다. 조사 주체만 봐도 알 수 있다. 설문 결과를 공개한 국가우주정책센터는 국가 우주정책을 총괄 지원하는 싱크탱크로 과기정통부가 2021년 설립했다는 점에서 숨은 의도가 엿보인다. 우주항공청의 사천 입지에 반발하는 세종 관가와 대전 연구단지 등의 계산된 언론 플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며칠 동안 주요 언론과 대전권 지역 언론에 실린 기사를 보노라면, 이들의 속셈이 그대로 드러난다. ‘전문가들도 대전·세종권 선호’를 시작으로 ‘사천 설치 강행에 불만이 높다’거나 ‘거리 멀고 정주 여건 미흡’하고, ‘해외 인재 유치 어려워’ 등의 표현을 써가면서 “지금 세종시 관가나 대전 대덕연구단지에는 ‘사천 공포증’이 일고 있다”는 자극적인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천 설치를 강행하는 것은 정치가 연구를 지배하게 되는 꼴”이라는 익명의 연구원 관계자 말까지 덧붙여졌다.

이 정도면 언론 플레이에 관한한 전문가 수준이다. 소위 ‘언플 타이밍’도 딱 맞췄다. 정부가 3월 2일부터 17일까지 보름 동안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입법 예고해 대국민 의견 수렴 중이라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5월에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연내 개청을 목표로 하는 만큼 이번이 마지막 반전의 기회라고 본 듯하다. 조직규모나 인원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차관급 중앙행정기관으로 청장·1차장·1본부장 체제라는 윤곽만 나와 있다. 다른 부처들을 감안할 때 약 200명 안팎의 규모로 출발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우주개발진흥법,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을 소관하게 돼 과기정통부의 우주기술과, 산업통상자원부의 기계로봇항공과 인력들이 일단 우주항공청 소속으로 전환된다. 관가에서는 200명 중 100명은 기존 공무원으로, 나머지 100명은 연구개발(R&D)을 담당한 임기제 공무원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하면 이전대상 기관의 해당 공직자들의 입장은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교육여건이나 주택 쇼핑 문화시설 등 정주 여건 문제는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로 경남은 마치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것처럼 매도해서는 안 될 일이다. 위험천만한 의식세계가 아닐 수 없다. 정부가 특별법에 우주항공청 입지를 명시하지 않은 점을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일정 부분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사천으로 보낸다면 휴직을 하겠다거나 승진이라도 시켜주어야 한다’는 공직자의 협박성 여론몰이는 곤란하다. 지금은 우주강국과 국가균형발전측면에서 우주항공청 사천시대가 연착륙 할 수 있는데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정부는 더 이상의 소모적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사천입지를 공식 확정짓고 우수 인재 영입을 위한 다양한 특례와 인센티브, 정주여건 개선 등 후속 대책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경남에서도 발 빠른 준비와 대응책을 추진해 더 이상의 소모성 논란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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