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대석] 성낙우 도예가 “도자기는 내 삶이죠”
[문화초대석] 성낙우 도예가 “도자기는 내 삶이죠”
  • 백지영
  • 승인 2023.02.20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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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업과 진학 계기로 55년 도예 인생
전통 굴레 벗어나 독창적 조형 세계
자연에 영감 ‘빛의성곽’ 연작 이어가
“머릿속 작품, 현실에 나올 때 희열”

“도자기는 내 삶이고, 내 인생이에요. 지금껏 흙과 인연을 맺고 평생 걸어왔으니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전부’. 마산지역에서 활동 중인 원로 도예가 심곡 성낙우(71) 작가는 자신에게 있어 도자기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55년째 흙을 만지며 도예의 길을 고집해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답변이다.

 

 

성 작가가 도자기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지난 1968년 마산공고 요업과로 진학하면서부터다. 요업은 흙을 구워서 도자기·벽돌·기와 등을 만드는 공업으로, 넓게는 유리·시멘트·단열재 같은 제조업까지 포함하는 분야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그가 미술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을 눈여겨본 은사가 요업과 진학을 권했다.

그렇게 처음 물레 앞에 앉은 그는 금방 도자기에 매료됐다. 졸업 후 국립도자기연구소로 들어가 유약을 연구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대부분 화장실용 도기나 타일, 시멘트 공장 등 산업 현장으로 취업했던 동급생들과 비교하면 흔치 않은 선택이었다.

성 작가는 “일부 친구들은 밀양도자기·한국도자기 등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개인 도자 작업을 하는 경우는 정말 없었다”며 “같이 공부했던 60명 중 한두 명은 조그만 타일 공장 등으로 도자기 작업을 이어 나갔지만, 나머지는 모두 전공을 바꿨다”고 했다.

지금이야 경남에서도 도자기 빚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당시는 기반 시설이 없다시피 했다. 도내에는 옹기 공장 외에는 변변찮은 도자기 공장이 없어, 빚은 도자기를 굽기 위해 경북 원정을 떠나는 등 열악한 상황이었다.

험로가 뻔히 보이는 데도 그가 도자기를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얼마나 성의를 가지고 얼마나 만졌는지가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생각한 대로 작품이 나올 때 찾아오는 희열이 그가 한평생 가마 앞을 지키도록 하는 원동력이었다.

성 작가는 지난해 12월 경남도가 선정하는 ‘제61회 경상남도 문화상’을 수상했다. 당시 도내 현업 예술인 단 2명에게만 주어졌던 이 상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랜 세월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경남에서 현대 도예 장르를 선도해 왔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가 현대 도예에 탐닉했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만 해도 대부분의 도예가가 그렇듯 성 작가 역시 백자·청자 등 전통 도자기를 주로 제작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현대 도예로 주 무대를 바꾼다.

“전통 도자기를 할 때는 늘 둥근 형태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정형화된 방식에 얽매였어요. 그런데 현대 도자기를 만들 때는 색다른 유약을 사용하고, 제 나름로의 색상을 입히는 등 자유롭게 작업할 수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도자기는 이래야 한다’는 전통적인 굴레에서 해방됐다. 자연스럽게 ‘도자기’ 하면 흔히 떠올리는 물레와도 멀어졌다. 정형 형태 외에 사각 등 조형적인 작업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레의 회전력을 이용하는 대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말 그대로 손으로 한 땀 한 땀 흙을 빚었다.

그가 40년 가까이 이어온 대표 연작 ‘빛의 성곽’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다. 대자연의 성곽인 ‘산’을 담아낸 동명의 작품들로, 음영을 통해 원근을 표현했다.

‘산’을 품은 도자기는 인체에서 영향을 받은 형태에서 시작해 최근에는 호박·가지 등 자연물이라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그 속에는 변함 없이 성곽이 담겨 있다.

성 작가는 “작업실이 농촌에 있어 자연을 많이 접하기 때문인지,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받게 됐다”고 설명하며 “호박은 넝쿨째 굴러오는 복, 가지는 다산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작품을 빚는 심곡도예연구소(창원 마산합포구 진북면)는 광려산과 대산을 병풍처럼 끼고 있어 굽이굽이 골짜기를 돌아들어 가야 만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 그를 20여 년 전 도심 작업실에서 이곳으로 이끌었고, 이곳을 오가며 만나는 풍경들은 그의 작품 세계를 또 다른 장으로 인도했다.

최근 성 작가는 거인처럼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바위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착안해, 자연 속 바위 형상을 구현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몽돌 같은 형상을 만들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어요. 아직은 제 마음에 찰 정도의 작품은 안 나오는데, 계속 빚어봐야지요.”

원로 도예가라고 작품이 술술 빚어지는 것은 별나라 이야기. 예술가의 길은 끝없는 고뇌의 연속인 만큼, 생을 다하는 날까지 정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성 작가는 “지역에 터를 두고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펼친 만큼, 언젠가는 현대 도예가로서 그간의 작업을 초기·중기·후기 등 연대별로 전시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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