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의 가치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보편적 인권을 실천하려고 했다는 점에 있다. 사회에서 천대받던 이들의 평등에 대한 절규와 이를 도우고자 했던 조력자들이 일궈낸 형평운동을 우리나라 인권운동의 효시로 보는 이유다.
도시의 정체성과 브랜드는 그 도시가 가진 유·무형의 자산으로 성립된다. 그렇다면 발상지인 진주에서는 100년을 맞은 형평운동의 정신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을까?
김중섭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996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맞춰 진주에서는 당시 노인과 장애인, 여성,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들을 발표자로 초청해 진주인권회의라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면서 “형평운동처럼 전국 최초로 인권조례를 진주에서 만들어 보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는데, 인권 분야에서 진주시가 가장 앞서 노력해 나갔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형평정신을 농민항쟁 등으로 이어지는 진주 정신의 한 축으로 평가한다.
김경수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박사는 “당시 진주지역에 소년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뿌리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형평운동도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면서 “대표적으로 여성들의 교육기관으로 1925년 개교한 진주여고는 문을 열기 1년 전부터 학교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소년운동도 다른 지역보다 먼저 시작했다. 천대받는 신분에 대한 평등을 외친 형평운동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진주시는 2014년 ‘진주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형평운동 정신을 포함한 인권이 존중되는 지역사회의 실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관련 조례에 따라 매년 형평운동의 홍보와 정신 계승을 위한 ‘형평운동기념사업회’ 등 인권단체에 대한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20년 12월에는 지역 장애인의 사회활동 참여 기회 확대와 평등권 실현을 도모할 수 있는 ‘진주시 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보장에 관한 조례’가 제정돼 시행되고 있다.
이 조례는 장애인 차별금지와 인권보장에 관한 중·장기 정책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이에 따른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해당 조례는 인권보장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관련 시설과 재가 장애인을 대상으로 5년마다 실태조사를 하도록 명시돼 있다.
김 명예교수는 “국가인권위가 만들어지고 관련 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시행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아직 형평운동은 진주밖에 모르는 역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형평 100주년을 맞은 올해 다양한 부대행사가 마련된다는 점이 반갑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진주시는 지난해 ‘형평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100주년인 올해 진주 형평운동과 그 정신을 기리고 계승할 수 있는 기념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4월 24일부터 30일까지 7일간의 형평주간으로 정하고, 형평사 창립일인 4월 25일 기념식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추진할 예정이다.
진주시 관계자는 “형평운동 역사 다큐를 제작해 전국에 방영함으로써 진주 형평운동을 널리 알리고, 동시에 진주가 형평운동의 발상지임을 전국적으로 홍보하면서 진주시의 문화관광 콘텐츠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형평의 기억]“형평정신 이어가는 인권도시 만들어 나갈 것”
형평운동은 그동안 발상지인 진주시에서도 제대로 평가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형평운동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는 여론은 조금씩 공감대를 모아가고 있다.
조규일 시장은 “진주시가 시행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증진 시책, 장애인 인권보장 정책 등과 함께 여성·아동 친화도시로서의 다양한 사업과 미래가치 등을 널리 알려 나간다면 인권도시로서 진주시의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며 “앞으로 진주시가 형평운동 발상지라는 역사적 사실에 걸맞는 인권도시로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아 오늘날 그 의미와 교훈에 대해 평가한다면?
▲100년 전 진주에서 시작한 형평운동은 당시 천대받던 백정들과 그들의 처지에 공감한 진주의 선각자들이 힘을 모아 펼친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공평하게 인간 존엄을 누리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던 형평운동의 높은 이상은 오늘날 아직도 이루지 못한 인류의 꿈으로 남아 있다. 100년 전의 형평운동이 대단하면서도 돋보이는 이유다. 형평사가 내세운 활동방향은 공평, 애정, 교육 장려이며, 공평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화두인 공정과 상식의 기본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애정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뜻하며 교육 장려는 우리가 주장하고 있는 평생교육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오늘날의 현실에 비춰 여전히 큰 교훈을 준다고 생각한다.
-아직 형평운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형평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형평운동이 단순히 ‘백정 신분 해방 운동’이라는 의미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사실 우리나라 신분제도는 형평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1894년 철폐됐다. 형평운동이 시작되기 29년 전에 이미 백정이란 신분이 없어졌지만 일반 백성들은 백정을 자신들과 동등한 신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진주의 선각자들이 이러한 잘못된 관습을 없애기 위해 형평운동에 앞장섰던 거였다. 오늘날에도 형평운동을 백정 신분 해방 운동으로만 알고 있는 경향이 있다. 형평은 말 그대로 ‘저울처럼 공평하다’는 의미이며 좀 더 넓게 생각하면 요즘 자주 언급되고 있는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100년 전 진주에서 먼저 실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먼저 인식해 주었으면 좋겠다.
-형평운동의 유적이 곳곳에 있지만 잘 관리되지 못하고 일부는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념물과 유적 등을 재정비할 계획이 있는지?
▲진주 형평운동 관련 기념물은 형평운동 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옛 천전리 지역을 중심으로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형평운동 기념탑’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강상호 선생과 함께 형평운동에 앞장섰던 신현수 선생 공덕비 등이 칠암동과 망경동에 있다. ‘형평역사공원’ 조성의 필요성도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형평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형평운동 기념물 등 유적들을 시민들이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겠다.
-형평운동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자산과 기억을 잘 관리한다면 ‘인권도시’라는 진주의 도시 브랜드 가치를 끌어 올리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주시가 노력하는 부분을 소개한다면?
▲‘진주’라는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지금도 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여성 친화도시로 양성평등 문화 확산과 여성의 사회참여 활성화 및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 조성 등 평등문화가 살아 숨 쉬는 행복한 도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동을 존중하는 아동 친화도시 진주’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아동 친화도시는 ‘유엔 아동권리 협약’의 기본정신을 준수함으로써 아동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아동 친화적인 환경을 가진 도시를 말한다.
진주시가 여성 친화도시, 아동 친화도시 등 현재 우리들이 약자라고 인식하고 있는 여성과 아동을 위한 인식 개선과 다양한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펼친다면 형평운동의 도시라는 역사적 사실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도시 브랜드 가치가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