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형평운동 100주년 [6]다시 써야 할 형평
[신년특집]형평운동 100주년 [6]다시 써야 할 형평
  • 임명진
  • 승인 2023.02.0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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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는 세상 첫 길을 내다…100년 지난 지금도 형평정신 되새겨야
1923년 4월 창립한 형평사는 전국 40여 만명의 백정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1926년에는 지회·분회가 130개, 1931년에는 166개에 달하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거대 사회운동 단체로 발돋움 한다. 12년간 존속하는 동안 사원들의 교육과 경제적 권익 보호를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했다. 특히 농민, 노동, 여성 등 다른 사회단체들과도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활동범위를 크게 넓혀 나갔다.

◇형평운동, 평등을 일깨우다

형평사의 최대 성과는 ‘사람은 모두 평등한 존재’라는 인식을 널리 알렸다는 점에 있다.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형평사는 예산의 대부분을 사원들의 교육이나 계몽 활동에 투입할 정도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원들과 자녀의 학교 입학을 적극 독려하고 지역별로 공개강좌와 야학, 강습소 같은 비인가 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했다.

또한 사원 개개인의 지식과 의식수준을 높이기 위해 신문과 잡지의 구독을 장려했으며 1929년에는 일본의 방해에도 자체적으로 ‘정진’이라는 잡지를 창간하는 데 성공했다.

형평사는 옛 관습을 고집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성장해 나갔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반형평 충돌 사건의 횟수의 변화는 형평운동의 성과를 반영해 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당시 일경에 보고된 충돌 건수는 형평사 창립 첫해인 1923년 17건을 시작으로 1927년에는 44건, 1928년에는 60건으로 점차 증가하다가 1929년에는 68건으로 최고치에 달했다.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1930년에는 52건, 1932년 31건, 1933년 26건, 1934년 27건 등으로 눈에 띄게 감소한다.

이러한 추세의 변화는 형평사원들의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편 형평운동이 활성화 될수록 충돌 횟수도 줄어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중섭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형평사는 차별과 굴욕을 당할 때 그냥 지나치지 말고 저항하라고 사원들에게 교육했다. 저항하지 않는 사원을 자체적으로 처벌하는 규정을 둔 분사도 있었다”며 “이는 사소한 일이라도 적극 대응해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주시 남강둔치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 두 손을 꼭 잡은 남녀의 형상은 평등과 자유가 넘치는 형평의 세계로 함께 나아가자는 희망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일제, 동맹사건 조작하며 대대적 탄압

형평사는 창립 이듬해인 1924년 8월 15일 대전에서 열린 ‘전조선 형평사 대회’에서 진주에 있던 본사를 서울로 이전하는 것을 결의하면서 형평사의 주도권이 서울파로 넘어갔음을 보여줬다.

백정출신이 많은 서울파는 백정들의 경제적 권익 향상을 최우선 노선으로, 비백정 출신의 영향력이 강했던 진주파는 신분차별 철폐 등 보편적인 인권 운동에 더 관심을 쏟았다.

형평사는 규모가 커지면서 점차 이념과 민족 문제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심화된다.

1927년 항일 단체인 고려혁명당에 형평사 사원들이 가담한 사실이 일경에 적발되고 1930년대 들어서는 사회주의 세력의 노동과 계급운동을 강조하는 새로운 단체를 다시 결성하자는 움직임에 갈등은 더욱 첨예화 됐다.

형평사의 존립에 결정타를 가한 사건은 1933년 일본이 조작한 ‘형평청년전위동맹’ 사건이다. 백정들이 다루는 고기와 가죽은 군수용으로 쓰이는데다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추고 있어 일본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당시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은 형평사의 일부 사원들이 ‘형평청년전위동맹’이라는 공산주의 조직을 결성했다는 거짓 혐의를 씌우고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일본이 조작한 사건이지만 형평사내의 진보세력이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조종받아 왔다는 의구심을 낳게 되고 사실여부를 떠나 많은 사원들이 형평사를 이탈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탄압과 분열…결국 형평운동 해체로

일제의 탄압으로 형평사는 분열이 가속화됐다. 사원들 사이에서도 경제적인 이해관계로 충돌하는 사례가 빈번해 졌지만 지도부가 이를 중재하지 못하는 등 갈수록 파행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 지친 사원들의 참여가 급속하게 줄면서 166개에 달했던 전국 조직은 1935년에는 98개로 급격하게 축소됐다.

결국 형평사는 1935년 4월24일 서울에서 열린 제13차 정기 전국대회에서 명칭을 대동사로 바꾸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게 된다. 이후 대동사는 일제에 부역하는 친일단체로 전락한다.

그렇게 형평사는 12년간의 활동을 뒤로 한 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지만 우리나라에 ‘인권’이라는 개념을 뿌리 내리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사회적 약자 배려 시대 앞서간 평등운동

형평운동은 단순히 백정들에 대한 신분 차별 철폐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더 나아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에도 이바지 했다.

전국 대의원에 여성들이 선출되고, 조직내에 별도의 여성단체까지 결성되면서 남녀 성차별과 신분차별이라는 이중적 고통을 겪고 있던 여성사원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섰다.

또한 1926년에는 사원 자녀 교육을 지원하는 기금을 조성하고 자체적으로 ‘형평 학교’ 설립까지 계획했다. 이는 형평운동이 여성과 소년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진일보한 운동을 지향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 형평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신분의 벽은 사라졌지만 또 다른 이름의 차별과 편견의 벽이 우리 주변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벌 때문에, 피부색이 다르거나 미혼모라서, 한 부모 가정이라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종교가 달라서, 가난하기 때문에, 성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학살과 내전, 국가 간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이곤정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형평의 정신은 소외받고 외면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한발 더 다가서서 함께 손잡고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연대해 가면서 실질적인 인권운동이 실현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계속 노력해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형평의 기억>“100주년 맞아 형평정신 널리 알려 나갈 것”
여태훈 형평운동100주년 기념사업추진단장

“100주년인 올해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통해 형평의 정신을 널리 알려나갈 예정입니다.”

여태훈 추진단장은 “그동안 형평운동기념사업회에서 형평답사 프로그램, 인권영화제, 인권포럼 개최 등의 형평운동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 왔다”면서 “덕분에 관심을 가지는 시민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지만 시민사회단체라는 특성상 인력과 예산의 부족, 경기 침체의 여파, 청년세대의 무관심 등 아직은 부족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래서 “100주년을 맞아 과거의 역사로 남아 있는 형평운동이 아닌 현재 진행형인 형평운동으로 만들기 위한 의미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100주년에 맞춰 올해 진주교육청의 지원으로 초등학교 5, 6학년용 형평운동지역사 교과서를 출판할 예정이다.

여 단장은 “형평정신은 과거에 있었던 박제화된 정신이 아니라 착취와 차별, 억압과 소외 등이 존재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하다”면서 “형평정신을 실천하는 길은 우리 사회가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배우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형평사 기관지 ‘정진’ 창간호(1929년)
여태훈 형평운동기념사업회 100주년 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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