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사랑과 애정이 흐르는 "여보 당신"
[경일칼럼]사랑과 애정이 흐르는 "여보 당신"
  • 경남일보
  • 승인 2023.02.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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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 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안명영 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생각에서 나오는 말에 어찌 뜻이 실리지 않겠는가. 오랜 세월 사람의 입에서 나오고 듣고 말하고 거르고 걸러 살아남는 말에 고유한 의미가 실리게 마련이다. 국어사전에 손님을 ‘손’의 높임말이며 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 ‘님’은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로서 ‘씨’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단골손님, 백년손님, 영원한 손님 등으로 불리고 있다.

사위를 백년손님이라 한다. 사위는 딸의 남편이자 외손자·외손녀의 아버지이므로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위가 오면 장모는 씨암닭을 잡아 환대하는 것은 딸을 위한 어머니의 지혜라 할 것이다. 닭의 볏은 문(文)을 상징하고 발은 무(武)로 여겼다. 적과 맹렬히 싸우므로 용(勇)이고 먹이가 있으면 자식과 무리를 불러 먹여 인(隣, 仁)이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간을 알려주니 신(信)이다. 결혼식은 신랑 신부에게 일생에 최고로 중요한 행사이다. 전통 혼례상에 닭을 올린다. 이는 닭에서 지혜를 깨치라는 것이리라!

영원한 손님은 누구인가! 친족 사이의 멀고 가까운 정도를 촌수(寸數)로 나타낸다. 부모와 자식은 1촌이고 형제 사이는 2촌이며 태어나면서 부여되는 숫자이다.

부부 사이는 어떻게 될까. 영(零)촌이다. 零은 값이 없는 수로서 ‘0’으로 표시하며 숫자에 붙이면 크기가 결정된다. 1에 0하나 붙이면 9에 1을 더한 10(十)이고 두 개 붙이면 十의 10배가 되는 100(百)이며 세 개는 十의 百배가 되는 1000(千)으로 된다. 0은 인류의 위대한 발견이며 10진법을 가능하게 했다. 실로 부부는 마법의 수 영(零)촌의 관계로 되는 것이다.

퇴계 선생은 혼례를 치룬 손자 안도에게 편지를 보낸다. ‘부부란 인륜의 시작이고 만복의 근원이므로 지극히 친밀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지극히 바르게 하고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부부간에 예를 갖추어 공경해야 함을 잊어버리고 너무 가깝게만 지내다가 깔보고 업신여기는 곳에까지 이르고 만다. 부부간에 예를 갖추어 공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가정을 바르게 하려면 그 시작부터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원나라 최고 명필가로 손꼽히는 조맹부는 송설체라는 필체를 만들고 서예와 그림도 유명하다. 부인 관도승 역시 회화와 시작에 능했다. 부부 금실도 좋고 사랑이 깊어 칭송이 저잣거리에 나돌기도 하였다. 조맹부가 잔치 집에서 한 가녀를 봤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부인에게 첩을 들여도 되겠느냐고 물어오자 남편에게 시 한수를 내민다.

‘한 덩이 진흙을 이겨 하나는 당신, 하나는 나를 빚습니다. 당신과 나를 다시 짓이겨 뭉갭니다. 물을 다시 부어 당신을 빚고, 또 나를 빚습니다. 내 진흙 속에 당신 있고, 당신의 진흙 속에 내가 있습니다. 살아생전 당신과 함께 금침을 펴고, 죽어서는 같은 관을 쓰겠지요.’

서로의 진흙을 다시 짓이겨 당신과 나를 빚어 살아서 한 이불에 잠자고 죽어서 한 무덤에 묻히고 싶다! 관도승의 애절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다. 가히 부부는 영원한 손님이라는 비유를 이렇게 잘 할 수 있을까!

부부 사이에 관심과 격식을 갖춘 호칭을 사용하자. 여보(如寶)는 부인을 보배와 같이 소중하고 귀중한 사람! 남편에게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내 몸과 같다는 당신(當身)의 호칭을 사용하면 대함이 극진해질 것이다.

계묘년(癸卯年)은 토끼의 해이다. 卯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형상으로 만물이 나오는 생명의 탄생을 뜻한다. 토끼의 기운이 누리에 퍼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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