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확대경] 경남도립미술관 ‘화화:마주한 서화와 미술’展
[전시확대경] 경남도립미술관 ‘화화:마주한 서화와 미술’展
  • 백지영
  • 승인 2023.01.31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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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녹아든 글과 그림, 오늘의 미술을 피우다

지난해 10월 28일, 경남도립미술관은 3개의 전시를 동시에 개막했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영원한 유산’(3층)과 경남 작가 조명전 ‘백순공:선의 흔적’(2층), 소장품 기획전 ‘화화:마주한 서화와 미술’(1층)이 그것.

기획 전부터 세간의 이목이 쏠렸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은 지난달 25일로 끝이 났지만, 함께 시작했던 2개의 전시는 오는 19일까지 계속된다.

이들 전시는 그간 유명세에 가려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았지만, 3개 층 전시를 모두 감상한 이들 사이에선 취향에 따라 1층이나 2층 전시가 더 좋았다는 평가도 나오는 등 발길을 멈추게 하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그중 1층에서 펼쳐지고 있는 ‘화화:마주한 서화와 미술’ 주요 작품들을 지난달 25일 오후 전시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둘러봤다.

 

지난 25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화화:마주한 서화와 미술’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동양미술사상에서는 서화일치 사상, 서화동원론이라고 ‘글과 그림은 하나다’라고들 합니다. 오늘날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보내다가 내 마음을 더 잘 표현하고 싶을 때 이모티콘을 함께 보내는 것과 비슷한 의미가 되겠지요.”(박수영 전시해설사)

‘화화:마주한 서화와 미술’은 전통적인 ‘서(書·글)’와 ‘화(畵·그림)’가 현대미술로 변화하는 과정을 한국 미술사의 지형도 속에서 파악하고자 기획된 전시다.

서부 경남의 진주와 동부 경남의 김해를 기반으로 한 근대 전통 문인화 작품으로 시작해, 지역 서예가의 작품과 서예의 추상적 조형성·필법 등을 활용해 재해석한 추상회화·판화·조각 등 다양한 매체의 소장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경남지역 문인화가 황영두·황현룡·김종대·안병목 등을 비롯해 근현대 한국 화단을 이끌며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김종영·이우환·박서보·남관·이응노·서세옥 등의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관람객 조규순(64·창원)씨는 “작품들이 생활과 밀접한 내면의 세계를 표현한 것 같다”며 “찌든 사회를 고발하는 듯해 인상 깊게 봤다”고 밝혔다.

석도영(18·창원) 학생은 “오랜만에 미술관을 찾았는데 학교에서 배운 비문학과 연관 지어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며 “전시관 맨 앞에 걸린 서세옥 작가의 ‘제비’는 그냥 볼 때는 제목대로 제비 같지만 전시 해설을 듣고 보니 또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김주현 학예연구사는 “소장품을 중심으로 글과 그림이 맞닿아 있는 관계성을 주목하는 전시”라며 “분절되지 않는 상호 연관성이 어우러지면서 나타나는 현대 미술 계보를 보여주기 위해 신경 썼다”고 밝혔다.

 

서세옥 作 ‘제비’. 사진=경남도립미술관


◇서세옥 作 ‘제비’=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작품으로, 전시 포스터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다. 서예와 수묵화를 결합해 여백의 미가 강조되는 작품이지만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까닭에, 관람객이 작품을 한참 들여다보며 일행과 감상을 나누는 모습이 자주 관찰됐다.

산정 서세옥(1929~2020)은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한 현대적 수묵화를 꾸준히 발표하며 동양화의 현대화를 이끌어온 작가다.

‘제비’는 진한 먹선과 담채를 사용해 날아가고 있는 제비 3마리의 옆모습을 반추상의 형태로 간략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제목을 보지 않은 채 작품만 보면 사람 인(人)자처럼 보일 정도로 ‘서’와 ‘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작가는 외형을 꼼꼼하게 묘사하는 데 연연하지 않고 대상의 본질적인 형태를 그림에 담고자 압축된 형상으로 표현했다. 오른쪽 아래 여백에 전각을 찍어 완성하면서 전통 동양화의 정신을 현대적 추상으로 재해석했다.

황현룡 作 ‘일지송’. 사진=경남도립미술관

◇황현룡 作 ‘일지송’=동초 황현룡(1883~1960)은 1883년 하동에서 태어나 진주를 기반으로 활동한 작가로, 목단에 특히 뛰어났다.

‘일지송’은 소나무 한 그루를 팔 폭 병풍 전면에 그려 꽉 채운 웅장한 작품이다. 나무 몸통의 나뭇결 묘사는 시선에서 가까울수록 아래에서부터 점차 진하게 선적으로 잡아 표현했고, 시선에서 점차 멀어질수록 먹의 농담을 옅어지게 조절해 작품에 공간감을 부여했다.

껍질부터 가지까지 섬세하게 담긴 소나무는 멀리서 보면 한 마리 용이 승천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사실적인 묘사를 하시면서도 환상적인 동물을 연상하게 하는 독특한 화풍을 가진 황현룡은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화가 이우환에게 어린 시절 글과 그림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연을 강조하기 위해 전시에서 스승과 제자의 작품은 나란히 배치됐다.

 

이우환 作 ‘선으로부터’. 사진=경남도립미술관

◇이우환 作 ‘선으로부터’=이우환(1936~)은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동양적인 정서와 결합한 독자적인 해석으로 한국을 넘어 일본, 유럽 등에서 주목받는 작가다.

‘선으로부터’는 흰 캔버스 바탕에 파란색 선들을 위에서 아래로 불규칙한 길이로 길게 내리그어가면서 리듬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단조로운 화면 구성과 단색의 색채는 담백한 동양적 미의 세계를 보여준다. 작품 속 선들은 하나로 완성된 개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로, 그 관계가 운율적인 리듬감을 띤다. 선명한 푸른 선은 밑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그 자취가 사라지면서 희미해진다. 선은 동양적인 기와 생명력의 근본이자 출발점이 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선을 긋는 일회적인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동양의 사상인 무위자연 상태에 다가간다.

 

남관 作 ‘무제’. 사진=경남도립미술관

◇남관 作 ‘무제’=남관(1911~1990)은 서예적 문자로 추상 작품을 제작해온 작가로, 한국적인 것은 소재가 아니라 정신과 필법을 통해서 표현 가능하다는 신념을 지녔던 작가다. 서양의 유화 매체를 동양 전통의 정신세계로 융합해 자기 양식으로 완성했으며 한국 추상 미술에 있어 독특한 추상 양식을 이뤘다.

‘무제’는 다채로운 원색 위에 푸른색 유화 물감을 풍부하게 표면에 덮어 칠한 뒤 그 물감 자체를 붓으로 문지르거나 긁어내는 기법으로 서예적인 문자 추상의 조형성을 표현했다. 작가가 타계하기 2년 전 제작한 작품으로, 환상적이고 유동적인 움직임과 미묘한 변이를 추구하며 자유로운 분위기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지난 25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화화:마주한 서화와 미술’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 해설사에게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25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화화:마주한 서화와 미술’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 해설사에게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25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화화:마주한 서화와 미술’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윤효석 작가의 '사색공부'를 감상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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