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선거제 개편을 향한 제대로 된 한 걸음
[경일포럼]선거제 개편을 향한 제대로 된 한 걸음
  • 경남일보
  • 승인 2023.01.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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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국회의원 출신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미리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서울대의 ‘차기 총장선거 관련 규정’을 정비한 사례가 있다. 필자 또한 21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선거제 개편 논의를 해 달라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왜냐하면 선거제도의 개편은 정치 전반에 대한 개혁과 맞물려 진행돼야 하고 각 지역별, 주체별 이해관계와 밀접히 관련돼 있어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최근에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선거제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논의에 불이 붙은 것은 참 다행이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가 하루아침에 일소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현재의 정치 분위기로는 안된다’라는 인식은 반영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선거제도란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마저 부족하지만 대의민주주의 취지에 더 부합하는 선거제로의 개편에 함께 나서야 할 때다.

현행 승자독식 구조의 소선거구제는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에 기반하는 극단적인 양당제 구도를 고착화해왔다. 거대 양당 간의 적대 정치로 인한 지역적 분열과 갈등은 당연한 귀결이다. 부작용이 큰 만큼 제도 개선의 답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지난 총선 때는 여러 계층과 소속의 대표성·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양당 독점 체제를 완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를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결과가 되었는데, 이는 취지나 방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 편법을 동원하는 바람에 개정 취지가 무너져서 한 걸음도 떼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 이번에는 부디 어떻게 고치든 ‘지지율대로의 비례성 원칙’이 어느 정도 반영되면 좋겠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여야 간, 또 각 주체별로 유불리의 정도는 다를 것이다. 여러 의견들이 표출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헌법개정을 수반하는 것과 같이 시간상 수용이 불가능한 논리들은 대부분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겉포장일 수도 있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을 넘고 있는 부동층을 고려하지 않는 양당 기득권 유지 차원에서 말이다. 이런 사안일수록 본말의 갈래를 잘 타야 한다. 현행 소선거구제 개편의 당위성과 관련한 ‘본말’의 구분에서 ‘본’은 텃밭에 기반한 거대 양당의 지역별 독식 구조를 줄이고 직능·사회 대표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말’은 개별 의원들 간의, 수도권과 지방 간의, 정당 간의 이해관계이다. 지난해부터 여야 의원들이 함께 하는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녹여내는 작업을 해 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완벽한 정답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면서 비례제를 강화하는 답 정도까진 도출해 주면 좋겠다. 그러면서 중대선거구제의 단점인 복수공천의 남발 방지 방안까지 마련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선출직인 국회의원 선거에서 텃밭 지형에 따라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임명직화 분위기를 줄이고, 투표의 50%가 사표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제8대 지방선거시 전국 11곳에 대해서 기초의원의 중대선거구제를 이미 시범실시한 적이 있는데, 복수공천의 남발 방지책까지도 마련했었다면 제대로 된 한 걸음을 뗄 수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제시한 선거제 개편방안은 4월 10일까지 ‘선거법만’ 개정하면 가능하므로 그 전진의 몫은 오롯이 국회에 있다. 그렇게 한 걸음을 떼고 난 후 차기 국회에서 다음의 과제를 다루면 된다. 그동안 선거제를 여러 번 고쳐왔음에도 늘 제자리였던 이유는 제도 개선에 따른 인적 쇄신이 동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적 쇄신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정당제가 개혁돼야 한다. 또한 내각제와의 연계, 대통령 연임제, 행정구역 개편 연계 등과 같이 헌법 개정을 수반해야 하는 사안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는 기대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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