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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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3.01.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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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이해인 수녀의 시 ‘작은 위로, 작은 기도(2)
이해인 시인의 시 모음 ‘작은 위로, 작은 기도’에서의 ‘작은’은 가톨릭교회의 미덕이다. 사랑을 뿜어내는 펌프 작용의 한 형식이다. 아니 영혼적 바탕 세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가톨릭교회의 이름들에 유독 ‘작은’이 접두사로 붙는다. ‘작은 예수마을’, ‘작은 자매회’, ‘작은 형제회’, ‘성프란치스코의 작은 꽃들’ 등이 그러하다.

이해인 수녀의 시에 ‘위로자의 기도’가 있다. 스스로의 아픔에서 남의 아픔에 위로가 된다는 이야기다.

“제가 아픈 것을 보고/ 누군가 작은 위로를 받는다면/ 그것도 좋아요/ 말로 하는 힘없는 위로보다/ 더 좋아요// 저의 아픔에 대한 두려움을/ 아직은 극복을 못했지만/ 아픈 사람을 조금만 덜 아프게/ 슬픈 사람을 조금만 덜 슬프게/ 도와 줄 수 있는/ 어떤 힘을 제게 주세요”

이해인 시인이 병고에 시달릴 때가 있었는데 그 병고로 이웃이 ‘작은 위로’를 받는다면 좋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가졌다는 시다. 일방적인 기도, 일방적인 위로의 언어보다는 아픈 실제에서 아픈 실제로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기회라면 기꺼이 아파줄 수 있겠다는 이야기이다.

이해인의 제8시집 ‘작은 기쁨’(2002)도 ‘작은’의 미덕이 들어가 있다. 이 시집은 시로서 누군가의 마음을 하얗게 만들고 싶어하여 한 톨의 시가 세상을 다 구원하진 못해도 작은 기도는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도하듯 써내려간 모두 103편의 소금 같은 시편들이다. 이 시집에는 필자의 발문이 들어가 모처럼 이해인 시에 대한 필자의 견해가 한 자리를 차지한다. 아마도 이 견해는 필자의 저서 ‘시 읽기의 행복’(을유문화사)에 이은 두 번째 비평인 셈이다.

“이해인 시인이 초대하는 말은 뒤틀려 있는 말이 아니라 뒤틀려지기 전에 있었던 본원적인 말이다. 세상이 뒤틀려 있으므로 이해인 시인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우리나라 시인들은 뒤틀린 언어로 세계를 노래한다. 그러나 이해인 시인은 뒤틀려 있지 않은 세계의 사랑을 노래하면서 사랑으로 가 닿는 세상의 대상들과 만난다. 기도 안에서 만나고 편지로서 만나고 그리움으로서 만난다.”

이 시집이 출간된 이후 필자는 부산 광안리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도원의 초대를 받아 아름다운 수도원의 성스런 십자가와 일과와 박물관 등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필자의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당시 동시를 쓰고 있던 손녀 한결이가 동행하여 해인글방에서 조약돌, 솔방울 등의 진귀한 수집품들을 한아름 선물로 받아 입이 벌어져 있었다. 특히 봉곡동 성당 초기 원장으로 와 계셨던 고 베네딕다 수녀님 무덤에서 짧은 기도를 바칠 수 있었던 일이 큰 추억이 되었다.

“물 한 모금/ 마시기 힘들어하는 내게/ 어느 날/ 예쁜 영양사가 웃으며 말했다// 물도 음식이라 생각하고/ 아주 천천히 맛있게/ 씹어서 드세요”(이해인 ‘새로운 맛’에서)

이날 이후 우리 가족은 물도 천천히 씹어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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