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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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3.01.0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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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진주 이현동골목문화제 ‘두 고개 이야기’출간(2)
이현동은 애초에 유곡동과 이현동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근래 하나의 동이 되었다. 이곳에 대학이 있고 도서관이 있고 중·고등학교와 초등학교가 짜드라 들어앉아 있다. 숙호산, 숯골, 만물도랑, 나불천, 운동시설 등이 있다.

시내 중심에 사는 사람들이 자세한 지형이나 전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두 고개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도 한 권의 필독서가 되는 셈이다. 이종만 시인의 ‘다들 되돌아갔다’는 ‘뭔가’에 대해 아는데 말하지 않고 있는 시다. 감질맛을 내게 한다.

“진주 근교를 벗어나/ 바람길을 헤쳐가다/ 안갯속으로 이끌려 들어가면/ 솔바람을 거느린 정자 하나 있다//그곳은 다람쥐가 기웃거리고/노루는 눈길을 주고 간다/ 동행을 원하는 사람이 있지만/ 무료한 날 혼자 다녀오곤 한다// 은근슬쩍 입이 견딜 수 없어/자랑을 늘어놓을 때는/ 주위 사람들이 날 에워싼다/ 그곳을 알려줄까 말까// 코스모스는 꽃대를 설레 설레 흔들고 있다/ 꼬리 긴 바람이 옷깃을 치고 간다/ 날 뒤따르던 사람들/ 안개가 길을 멈추자 다들 되돌아갔다”

이종만 시인은 이현동이 가지는 역사나 문화나 비밀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듯한데 자랑은 하지만 속속들이 드러내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 그만큼 혼자 알고 누리는 장소로는 이현동이 최고라는 것이다. 안개가 끼고 뭔지 모르나 설화 한 토막씩 모랭이 돌 때마다 전해주고 싶지만 코스모스가 호응해 흔들려 주는 곳이라 이보다 더 간절히 전해줄 수는 없어서일까? 그가 그냥 그 숲으로 들어가고 따라오던 사람들은 그새 다 가버리고 없다. 이종만의 시는 이렇게 감질나는 맛, 안개속 흐릿해지는 맛인데 그 맛이 이현동의 맛이라는 것이다.

이종만 시인은 통영 사량도 출신으로 그가 태어난 사량섬 벼랑 그 바닷가의 오래된 나무들이 엉켜 사는 지번에는 지금 다 훼손되어 몸채 사라진 자리에 안개만 들락거리며 시간을 살라먹고 있다. 시인의 욕심은 그 자리에 호텔 하나 들여놓는 일이라 했다.

그는 1992년 월간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시집 ‘오늘은 이 산이 고향이다’와 ‘찰나의 꽃’, ‘양봉일지’ 등이 있다. ‘양봉일지’ 시집으로 올해 의정부에서 주는 ‘천상병시문학상’을 받았다.

다음은 김성진의 시 ‘만물도랑’이 기다린다. 김 시인은 시와 수필을 겸하는 사람으로 양쪽 장르 다 골이찬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시는 ‘시와 사상’으로 등단하고 현재 ‘시와 편견’ 편집장, 진주문인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두곡 골바람 불어와/ 둑방길 바람개비 돌면/ 송사리떼 쫓고/ 멱감던 추억 돋는다//만물 들녘 풍년이 와도/ 이이야 풍악은 울리지 마라/ 숙호산 호랑이 잠을 깬다// 포효소리 천둥처럼 울리면/ 면호실 어린 아이/ 곶감 찾아 운다” 이 시를 보면 두곡, 면호실, 숙호산이 농촌의 숨겨져 있는 깊은 골짜기를 헤아리게 한다. 거기 ‘멱감던’, ‘풍년의 풍악’, ‘호랑이 곶감’ 등은 민속마을과 전설이 아직 바래지지 않고 연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곳임을 일깨워 준다. 반농(半農) 반도(半都)의 흔적이라 할까. 그것이 이현동의 정체성으로 더 값나가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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