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남계서원의 배향인물 1
[경일춘추]남계서원의 배향인물 1
  • 경남일보
  • 승인 2022.11.2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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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구 (남계서원 원장)
이창구 (남계서원 원장)
이창구 (남계서원 원장)

 

한국의 서원은 원래의 목적은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서원이 인맥을 형성하는 구심처로서 학맥과 학파를 계승하다보니 선사(先師)를 추모하는 제향처의 구실을 하게 돼 서원마다 배향 인물이 다르다.

따라서 남계서원도 세 분을 모시고 있는데, 그 첫 번째 주벽이 일두 정여창(鄭汝昌, 1450-1504)선생이다. 그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요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하동이며 자는 백욱, 호는 일두, 수옹(睡翁),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분이다. 아버지는 함길도 병마우후 증한성부좌윤 정육을, 어머니는 목사 최효손의 딸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뒤 한훤당 김굉필과 함께 함양군수이던 김종직선생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했다. 논어에 밝았고 성리학의 근원을 탐구해 체용(體用)의 학을 깊이 연구했다. 1480년에 성종이 성균관에 유서를 내려 행실을 닦고 경학에 밝은 사람을 구하자 성균관에서 그를 제일로 천거했다. 1486년 어머니가 이질에 걸리자 극진히 간호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최복(衰服)을 벗지 않고 3년 동안 시묘했다. 1483년에 참의 윤긍(尹兢)의 추천으로 소격서 참봉으로 제수됐으나 사양했다. 그러나 성종이 사임을 허락지 않고 그 해 별시 문과에 급제, 예문관 검열을 거쳐 시강원 설서가 됐는데 이때 정도(正道)로서 동궁(연산군)을 보호 지도 했으나 동궁이 좋아하지 않았다. 1495년(연산군 1년) 안음현감에 임명돼 백성들의 질고(疾痼)가 부렴(賦斂·조세를 매겨 거두던 일)에 있음을 알고 편의수십조(便宜數十條)를 지어 시행한지 1년 만에 정치가 맑아지고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민사를 돌보는 여가로 고을의 총명한 자제를 친히 교육했고 춘추로 양로례를 행했다. 1498년 무오사화 때 종성(鍾城·함경북도의 옛군)으로 유배돼 세상을 떠났다, 1504년 감자사화 때 부관참시 후 1506년(연산군 11년)중종반정으로 복관됐다. 중종 때, 정몽주, 김굉필과 같이 동국도학의 종으로 숭상됨에 이르러 1517년(중종 12년)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우의정에 추증되고 1568년(선조 1년) 문헌공의 시호가 내려졌다. 1610년(광해 2년) 정몽주, 김굉필, 이언적, 조광조와 더불어 동방오현으로 문묘에 종사됐다. 용학주소(庸學註疏), 주객문답설(主客問答說), 진수잡저(進修雜著) 등 저서가 있었으나 무오사화 때 소각돼 지금은 정구(鄭逑)선생이 엮은 문헌공실기가 전할 뿐이다. 저서로 일두유집이 있다. 1689년 3월 신도비가 세워졌으며 글은 동계 정온(鄭蘊)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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