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자유민주주의’의 뜻은 어디로?
[경일시론]‘자유민주주의’의 뜻은 어디로?
  • 경남일보
  • 승인 2022.11.15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유석(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
서유석(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


누구나 알고 있듯이 동아시아의 민주주의는 서구 근대에서 이식된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가장 보편적인 정치체제로 인류에게 남아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 후 어떤 국가도 민주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국가는 없다. 휴전선 너머에 있는 불법 단체의 이름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설령 형식이나 명분에 불과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재자 이승만을 4·19 혁명으로 끌어내렸고, 뒤이은 5·16 군사 쿠데타는 민주주의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꺾어놓았지만, 민중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12·12 사태와 같은 폭거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이란 독재자가 있었으나 5·18 광주민주화항쟁, 그리고 6·10 민주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수립해 민주정부를 세운 것이 우리 역사다. 이후 거대 양당이 번갈아가며 정부를 구성하고 있으니, 자민당이 장기 집권하는 일본에 비해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더 민주적인 정부를 이루어왔다고 보아도 큰 문제는 없을 듯싶다.

현 정부가 출범한 뒤,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단어는 ‘자유(自由)’다. 자유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다. 쓰임에 따라 다르지만 영어에서는 자유의 의미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Freedom과 Liberty가 그것이다. Freedom은 한 개인이 자신이 의지한 대로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자연적인 상태에서 간섭과 속박이 없는 형태다. Liberty는 조금 다르다. 정치적 자유 혹은 사회적 자유를 의미하는데, Liberty는 자유권이라고 설명하는 게 더 맞다. ‘자유론(On Liberty)’을 쓴 존 스튜어트 밀 역시 자유란 ‘한 사회의 다수가 소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라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현 정부가 그렇게 외치는 자유는 Freedom인가 아니면 Liberty인가? 윤석열 정부의 ‘자유민주주의’는 지금 국정운영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그 ‘자유’가 자연적인 상태의 자유를 의미하는지, 정치 사회적인 자유, 즉 자유권을 의미하는지에 따라 이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성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UN 연설에서 무려 33회 등장한 ‘자유’는 모두 Free 혹은 Freedom으로 통·번역된 바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자유’는 Freedom인가? 그러나 현 정부의 ‘자유’는 Freedom보다는 그저 반공에 반대되는, 매우 제한적이고 한국적인 개념으로서의 자유로 보인다, 최근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반영된 ‘자유민주주의’에서 강조되는 그 ‘자유’는 ‘반공’에 반대되는 고릿적 의미로 사용될 뿐,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의미는 담기지 않은 듯하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쓰게 되면, ‘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 개념과 혼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란다. 과연 그럴까?

사실 서구에서 수입된 ‘자유’라는 개념의 핵심은 Liberty라고 본다. 내 자유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자유를 인정하고, 함부로 다수가 소수를 억압할 수 없는 바로 그것.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아닐까? 윤석열 정부의 ‘자유’가 Freedom이어도 비슷하다. 아무런 간섭과 통제가 없는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면, 그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는 방법 외에는 답이 없다. 한 개인의 자유를 무조건 용인하면 사회가 존속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모비 딕(Moby Dick)’의 작가 허먼 멜빌도 “자유는 수단으로서만 좋을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Freedom is only good as a means, it is no end in itself)”라고 말한 바 있다. 아마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도 허먼 멜빌의 말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자유 그 자체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놓고 있다면, 그건 문제다.

사실 현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드러나는 ‘자유’는 수단이 아닌 목적처럼 보여 우려가 크다. 개정되는 교육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새롭게 강조하며, 성 소수자와 관련된 내용은 모조리 삭제한다고 한다. 성 소수자와 같이 소외된 존재의 ‘자유’는 아예 인정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무슨 국익인지는 몰라도 국익을 지킨다는 명분 하에 특정 언론을 순방기에 태우지 않겠다고까지 한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을 배제하는 조치가,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자유’인가? 진지하게 묻고 싶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자유’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