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화폐가치의 불안정 시대
[경일시론]화폐가치의 불안정 시대
  • 경남일보
  • 승인 2022.10.3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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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진석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을 돌파하며 한국경제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정부는 경기침체 속에서도 금리인상을 통한 긴축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원화가 달러뿐만아니라 다른 통화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이면 세계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우리 경제가 고스란히 이어받아 국내 경제의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화폐가치가 안정되어야 미래 경제상황의 예측이 가능하고, 가계와 기업이 미래지향적 경제활동을 추구할 수 있다. 화폐가치가 불안하면 각 경제주체들이 생산활동보다 투기활동을 선호하게 되어 경제순환이 왜곡되고 성장잠재력이 훼손된다. 화폐가치의 안정은 각 개인이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으며 사회에도 기여함으로써 시장기능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상호 동기를 부여하며 서로 발전하게 되는 필수조건이다.

화폐가치의 불안은 대체로 방만한 재정지출로 재정적자가 급속하게 확대될 때, 경기부양 시기를 놓치거나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져 뒤늦게 통화량을 비정상적으로 팽창시킬 때, 대외지급능력이 부족해지면서 조그만 충격에도 환율의 변동성이 확대될 때 비롯된다.

화폐가치가 흔들리면 위험과 불확실성이 커지며 사람들의 삶이 곤궁해진다. 1945년 8월 태평양전쟁 패전과 동시에 일본의 조선총독부는 미리 찍어 두었던 ‘조선은행권’을 남김없이 살포해 통화량을 2배 이상으로 팽창시켰다. 가뜩이나 어려웠던 조선경제는 물가폭등과 사재기 등으로 큰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국가를 무너뜨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돈의 가치를 타락시키는 것이다’라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말을 신봉했는지 모른다. 화폐가치의 불안은 대부분이 정부로부터의 위험과 불확실성이다. 정부의 기능은 가계와 기업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있다. 정부가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하겠다고 욕심을 내다가는 재정적자를 확대시키고 유동성을 팽창시키며 나아가 대외지급능력 부족을 초래해 화폐가치의 안정성을 해치기 쉽다.

정부가 눈앞에 보이는 성적표에 급급해 성장을 직접 이끌려다 보면 방만한 예산 집행이 불가피해져서 재정적자가 초래된다. 확대재정을 세수로 메울 수 없게 되면 나중에는 발권력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화폐가치가 더 불안해진다. 세수를 초과하면서까지 각종 재화를 무상으로 공급해 인기를 얻으려는 정책은 시장을 교란하고 경제를 어렵게 한다.

지난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우리 경제의 모습을 보면 잠재성장률이 저하되는 가운데 실제성장률도 그에 못 미치고 있다. 당장은 세수가 잘 걷혀 재정수지를 맞출 수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소득불평등과 고용 악화를 시장이 아닌 재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미래의 재정 건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경기는 하강기조에 접어들어 정책금리를 내려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데도 정치적인 이유로 정책금리를 계속 올리다가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 시장기능이 훼손된 후에 때늦은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량을 늘리는 사태가 오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화폐가치의 안정은 순조로운 경제순환을 위한 불가결한 조건으로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이 따로 움직이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하다.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이 균형을 이루려면 금리, 주가, 환율 같은 금융시장 가격지표가 성장, 물가, 고용, 국제수지 같은 거시경제지표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화폐가치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각 경제주체들이 화폐가치 불안으로 비롯될 수 있는 위험과 불확실성을 항상 가늠해봐야 한다. 정부지출은 적정하게 유지되는지, 금융시장이 거시경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대외지급능력은 어떤지 등의 변화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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