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스탠퍼드대학의 후쿠야마 교수는 2013년 ‘비토크라시가 미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라는 기고에서 비토크라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 용어는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 정치를 의미한다. 즉,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정치 세력의 강력한 반대에 의해 입법과 정책이 좌절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거부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작금의 ‘부울경 메가시티(광역울타리)’ 사안에 대한 논란도 일종의 비토크라시가 아닐까. 지난 정권의 여당 소속 경남도지사는 부울경 특별연합 구축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번 정권의 여당 소속 경남도지사는 이에 대한 전격적인 백지화를 주도하고 있다. 어떠한 논리로 포장하였든 그 의도가 지난 여당의 잔재로 기존 특별연합을 대우하고 이를 해체하기 위한 출구전략 내지 정치적인 위기 모면책에 있다고 보인다.
600여 년 이상 지속되어 온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을 위해서는 수도권이 가지는 중력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는 ‘인구 천만 명의 1시간 생활권이 가능한 단일 광역경제권’ 내지 ‘거대한 블랙홀, 인서울(in Seoul)을 막는 메가시티’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비토크라시에 기반한 실행 방안의 변경은 본 구축에 도움은커녕 기존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고 진영간의 분열만 조장할까 우려된다. 특별연합이 무산되면 정부가 약속한 국가 사무의 이관과 예산 지원도 백지화된다. 정부는 국토교통부 소관의 대도시권 광역교통 시행계획 제출 사무와 광역 간선급행버스 체계 구축 및 운영, 2개 이상 시·도에 걸친 일반물류단지 지정에 관한 사무 등을 특별연합에 이관하기로 했었다. 또 권역 내 순환 광역철도 건설 등 35조원에 달하는 예산 확보의 차질도 우려된다.
중간 과정을 거치든 바로 직진해서 행정통합을 하든 부울경 메가시티가 하루빨리 완성되면 좋겠다. 임기 4년 단체장들의 오판으로 명칭만 바꿔가면서 시간 까먹는 비토크라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재정분권 등 지방분권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 부울경이 상생 발전해야 한다는 시대적 명제 앞에서 여·야, 진보·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도지사와 시장이 바뀌어도, 여·야가 바뀌어도, 그 기조가 흔들리지 않을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지난 정권에서는 메가시티 범부처 TF를 출범시켰었다. 현 정부는 이를 더 강력한 컨트롤타워로 격상시키면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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