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비토크라시(Vetocracy)
[경일포럼] 비토크라시(Vetocracy)
  • 경남일보
  • 승인 2022.10.23 15: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스탠퍼드대학의 후쿠야마 교수는 2013년 ‘비토크라시가 미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라는 기고에서 비토크라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 용어는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 정치를 의미한다. 즉,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정치 세력의 강력한 반대에 의해 입법과 정책이 좌절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거부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작금의 ‘부울경 메가시티(광역울타리)’ 사안에 대한 논란도 일종의 비토크라시가 아닐까. 지난 정권의 여당 소속 경남도지사는 부울경 특별연합 구축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번 정권의 여당 소속 경남도지사는 이에 대한 전격적인 백지화를 주도하고 있다. 어떠한 논리로 포장하였든 그 의도가 지난 여당의 잔재로 기존 특별연합을 대우하고 이를 해체하기 위한 출구전략 내지 정치적인 위기 모면책에 있다고 보인다.

수도권 일극 체제와 이로 인한 지방소멸 속도의 가속화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주요 사안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울경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이에 대한 우선 방안이 행정통합을 통한 부울경 메가시티 구축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힘들고 험난하므로 그 과도기 단계로 특별연합 방식을 선택했었다. 일본의 간사이 광역연합이나 영국의 지자체연합기구 역시 수도권 일극을 극복하고 지자체간 중복투자와 소모적인 경쟁을 방지하는 연계와 협력 차원에서 출발했다.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2년이 넘는 긴 시간에 걸쳐 논의를 진행한 부울경 특별연합이 내년 1월 공식사무 개시를 앞두고 무산되고 있다. 급기야 그 대안으로 3개 광역지자체장은 ‘초광역 경제동맹과 부산·경남만의 행정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초지자체장들 역시 서부경남을 필두로 하여 특별연합에서 속속 탈퇴하며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있다. 대안으로 제시한 경제동맹은 특별연합과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애매하고, 법적 근거마저도 부족해 그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게 중론이다. 또한 부산과 경남만의 행정통합은 옛 경남의 복원이라는 명분마저도 없다.

600여 년 이상 지속되어 온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을 위해서는 수도권이 가지는 중력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는 ‘인구 천만 명의 1시간 생활권이 가능한 단일 광역경제권’ 내지 ‘거대한 블랙홀, 인서울(in Seoul)을 막는 메가시티’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비토크라시에 기반한 실행 방안의 변경은 본 구축에 도움은커녕 기존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고 진영간의 분열만 조장할까 우려된다. 특별연합이 무산되면 정부가 약속한 국가 사무의 이관과 예산 지원도 백지화된다. 정부는 국토교통부 소관의 대도시권 광역교통 시행계획 제출 사무와 광역 간선급행버스 체계 구축 및 운영, 2개 이상 시·도에 걸친 일반물류단지 지정에 관한 사무 등을 특별연합에 이관하기로 했었다. 또 권역 내 순환 광역철도 건설 등 35조원에 달하는 예산 확보의 차질도 우려된다.

중간 과정을 거치든 바로 직진해서 행정통합을 하든 부울경 메가시티가 하루빨리 완성되면 좋겠다. 임기 4년 단체장들의 오판으로 명칭만 바꿔가면서 시간 까먹는 비토크라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재정분권 등 지방분권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해 부울경이 상생 발전해야 한다는 시대적 명제 앞에서 여·야, 진보·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도지사와 시장이 바뀌어도, 여·야가 바뀌어도, 그 기조가 흔들리지 않을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지난 정권에서는 메가시티 범부처 TF를 출범시켰었다. 현 정부는 이를 더 강력한 컨트롤타워로 격상시키면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