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어른 혹은 엘리트가 없는 세상
[경일시론]어른 혹은 엘리트가 없는 세상
  • 경남일보
  • 승인 2022.10.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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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
서유석(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


몇 해 전 끝난 드라마의 유명 대사가 이거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잖아.” 맞는 말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어리고 젊을 때는 ‘바로 오늘’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처음이다. 인간이 자기 앞에 놓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그래서 어떤 일이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면 어디 그게 사람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라는 존재는 그 ‘어른’이 처음이어서 잘 모르겠고 실수가 예정되어 있더라도, 최소한 ‘어른다운’ 행동이 필요하다. 그 어른다운 행동이라는 거, 감히 별거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용기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지식인 혹은 엘리트라고 불리는 계층들이 처절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그들이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얘기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사실’ 혹은 ‘진위 여부’를 따지기 위해 정치적으로 풀어내야 할 문제들이 모조리 법의 판단으로 넘어갔고, 이 땅의 정치는 모조리 다 사라졌으며, 사법적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모든 일이 더 이상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미래를 위한 사회적 합의는 이제 완전히 실종된 상태다. 결국 남은 건 소모적 정쟁뿐이다. 지난 정권부터 이번 정권까지 정치인은 실종되고 ‘율사’ 출신들만이 정치의 꼭대기에 올라앉아 이해와 설득, 합의로 풀어내야 할 일들을 모두 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결국 어른이 없는 세상이다. 더 정확히는 사회 지도층(?) 혹은 오피니언 리더나 엘리트라고 불리는 계층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앞장서서 사회를 끌어나갈 자격이 없는 이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엘리트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엘리트의 사전적 정의는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사람, 또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이 땅의 엘리트는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받아 지도적 위치에 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는데, 문제는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지점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뛰어난 능력’의 기준을 학벌과, 선망되는 직업의 성취 여부로 판가름한다. 좋은 대학을 나왔는지, 교수, 법률가, 의사 같은 전문직을 가졌는지 여부로 엘리트의 기준을 나눌 뿐, 그 사람이 이 사회에 어떤 사안으로 무슨 기여를 했는지, 그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나누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인지 그런 요소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취급한다. 그저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원래 직업에서의 성취만을 놓고 판단할 뿐이다. 결국 엘리트다운 이미지에 대한 그릇된 편견, 사회 지도층의 자격에 대한 잘못된 기준이 지금의 ‘어른 없는’ 사회, ‘어른 없는 정치판’을 만든 건 아닐까 싶다.

어른다운 어른 없는 정치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다른 이슈에 묻힌 듯싶지만, 대통령은 자신의 분명한 말실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눙치고 넘어가려 든다. 온갖 의혹과 논란에 휩싸인 사건들도 변명으로 일관하기는 지난 정부나 이번 정부나 매한가지다. 미래를 위한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환율은 미친 듯이 오르고, 물가는 서민의 삶을 옥죄며, 주식시장은 대대적 폭락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어쩌랴. 엘리트의 자격이 없는 자들을 잘못된 기준으로 어른으로 삼아 정치 일선에 보내놓은 건 민주공화국에 사는 우리인 것을. 하지만 이제라도 진짜 어른, 진짜 엘리트를 보고 싶다. 늦지 않았다. 인정하고 사과하든지, 사과를 못 하겠으면 최소한 실수라도 인정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 진짜 엘리트와 어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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