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바래길을 가다[14]비자림해풍길(2코스)
남해바래길을 가다[14]비자림해풍길(2코스)
  • 김윤관
  • 승인 2022.10.0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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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 맞으며 걷다보면 어느새 비워지는 마음
 
남해 명산 호구산을 배경으로 이동면 지역 바래길을 걷는 사람들
비자림해풍길은 남해군 중에서도 창선도 소재 3개 코스(말발굽길, 고사리밭길, 동대만길)가 끝나는 창선삼천포대교 하단에서 다시 본섬 격인 삼동면 지족으로 되돌아와 남해읍으로 입성하는 코스이다. 이름 그대로 비자림군락지 작은 동산을 하나 넘고, 나머지 9㎞에 달하는 전 구간은 남해 내륙의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해안을 걷는길이다.

이 코스에는 자전거도로가 조성돼 있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내달리는 동호인들의 경쾌한 라이딩을 볼 수도 있다. 또 하나 특징은 남해의 유명산인 호구산(납산), 망운산이 주행 내내 함께해 바래길에서 바다와 산의 실루엣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지난 4월 벚꽃이 팝콘처럼 피어날 때 시작한 바래길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 어느덧 가을로 접어들었다. ‘가을볕 딸’이라 해도 한낮에는 아직 따가운 햇살이 내리쳐 목덜미를 따갑게한다. 해안을 장시간 걷다가 소나무와 비자나무가 빽빽한 비자림에 진입하면 한결 시원한 바람이 확 들어와 가을이 곁에 있음을 느낀다.



▲창선교남단 지족항 출발→다목적지족어촌체험관→농가섬·장구섬·북섬→죽방해안로→비자나무숲→이동면행정복지센터

(총거리 9.3㎞, 3시간 내외, 난이도 별 1개)

 
가을 들녘 속으로
▲일명 ‘멸치쌈밥거리’가 있는 창선교 삼동면 방향에서 출발한다. 가을 늦더위 한낮의 따가운 햇살은 선글라스와 챙이 넓은 등산모까지 소환한다.추석이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쌀쌀했던 날씨였는데 한낮에는 수은주를 다시 밀어올린다. 그나마 지족의 빠른 물살과 함께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그야말로 상쾌하다.

지족항으로 나가서 죽방로를 따르는 것이 바래길의 시작.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설치한 작은 석방렴, ‘달반늘’이라는 장어구이집 식당이 눈길을 끈다. 식당 이름이 서정적이랄까. 달반늘은 사실 남해군 삼동면 지족리의 옛 이름이라고. 섬의 생김새가 반달이어서 그렇다는 설이 있다. 달이 들어가는 단어는 사연이 잔인해도 시적이다. 달의 몰락, 달궁, 달관…, 지리산 깊은 산 속에는 2000년전 삼한시대, 마한 효왕이 진한의 침략을 피해 들어와 살았다는 달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진 ‘달궁’이라는 지명도 시적이다.

남해쪽 해안에 아담한 작은 섬이 몇 개 보인다. 그 중 하나가 농가섬이다. 옛사람들이 농사일을 하다가 짬을 내서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 섬에 가기 위해서는 남해대교를 닮은 다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개인 소유로 교량을 따라 들어가면 잘 가꿔놓은 다양한 종류의 수목들과 의자, 벤치가 놓여있다. 간단한 차와 음료 등을 먹을수 있는데 입장료를 내야 가능하다. 규모가 작은 미니 죽방렴도 볼수 있다. 힌남노같은 태풍이 몰아칠 때면 위험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섬 일부 토사가 깎여나가 사방공사를 해 놓은 모습도 보인다.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바다에 쌍둥이 섬이라고 부르는 장구섬과 섬북섬이 차례대로 나타난다. 앙증맞은 장구섬은 무인도로서 작은 해안에 모래사장이 있고 섬 정상엔 해안가 수종인 곰솔이 자생한다. 섬북섬은 친환경 시설을 하기위해 대구의 한 사업가가 사들인 것이라고 한다. 하절기 태양이 직접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풍경이 압권이다.

돌아 나와 해안 길을 따른다. 물 밖으로 점프하는 숭어떼의 은비늘이 햇살에 반짝인다. 바다에 박아놓은 말목에 줄지어 앉아 있는 백로와 중대백로 왜가리의 여유로운 휴식, 굽은 허리를 더 굽혀서 마늘밭 비닐에 구멍을 내고 마늘을 심는 마을 어르신, 삼태기에 담은 거름을 휘∼휘 뿌리는 아낙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트랙터, 바래길의 풍경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평화 그 모습이다.

해산물을 팔던 식당들이 카페와 펜션으로 차례대로 바뀌어가는 것, 통속이긴 하나 시대 변화에 따른 트렌드를 감히 어찌하랴.

비자림해풍길에는 차량이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교통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해안을 따라 굴곡진 도로가 많기 때문에 급커브길에서 갑자기 차량이 나타나는 수가 있다. 이 방향에선 아예 바다쪽 난간에 붙어 주의를 기울이며 일렬로 걷는 것이 좋다.

‘따르릉 남해’라는 이름의 자전거 라이딩 코스가 조성돼 있다. △설천면 노량리 충렬사(남해대교부근)∼남해읍 선소마을 △남해보건소∼삼동면 지족 △삼동지족∼창선삼천포 연륙교 3개 코스이다. 남해군 해안 중 큰바다 방향을 제외한 육지 쪽 모든 구간이 자전거도로라고 보면 된다.

경남일보에서는 전국 규모의 자전거대회를 2023년 5월께 남해바래길 이 일대에서 개최할 계획을 갖고 있다.

 
비자림
비자림동산에 닿는다. 데크로 만든 계단을 올라 서면 비자나무가 도열해 여행객을 반기듯한다. 비자림 숲길은 580m정도 되는 산책길로서 6000㎡ 넓이에 다년생 비자나무 수백그루가 심겨져 있다. 큰 고목이 있어 다가갔더니 비자나무가 아닌 느티나무, 편백나무였다. 자연상태의 비자나무나 고목을 찾기가 쉽지 않아 다소 아쉽다. 2017년 남해군이 사업비 1억원을 들여 조성했다. 동산 정상에 원형의 웅덩이가 복원돼 있어 특이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라도 허투루 버리지 않겠다는 남해인들의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비 내린지가 오래 됐는데 상당한 양의 물이 고여 있다.

비자나무는 내장산이 자생가능한 북방한계선이다. 수형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되며, 열매는 구충제 및 변비 치료제나 기름을 짜는데 쓰인다. 도내 사천 성내리 곤양면 사무소에 있는 비자나무는 높이 19m, 수령 300년을 자랑한다. 본래 암나무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일부 가지에 수꽃이 달린다고도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산을 내려오면 창선교에 연결되는 삼이로와 합류하고 곧 등모교를 건넌 뒤 들판을 따라 이동면소재지 방향을 진행한다.

정면에 금산과 설흘산 망운산과 함께 남해를 대표하는 명산 호구산(621m)이 검푸른 산 실루엣을 드러내보인다.

앞서 앵강만을 따라 도는 바래길 10코스, 앵강다숲길 바로 뒤에 있던 산이다. 한바퀴 돌아 비자림해풍길에서도 다시 이 산에 가깝게 다가서는 것이다. 한자 원숭이납(猿)‘납산’이라고도 부른다. 사실 앵강만 호구산과 남해읍 뒷산 망운산(784m)은 이 코스 어느 곳에서도 특징적으로 잘 보인다. 추갑철 경상국립대 교수는 최근 호구산 기슭 이동면 신전리에서 산림생태조사 중 구형태의 곰솔을 발견해 언론에 발표한 적이 있다.

태풍을 이겨내고 참새들의 극성도 뿌리친 황금빛 가을 들녘 속으로 들어간다. 풍년은 매 풍년이로되 어느 때부터 그것이 반갑지 않은 때가 됐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올해 햅쌀값이 20%까지 떨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우리 농업에서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함안에서 자식같이 키운 벼를 갈아엎었고 며칠 전에는 진주농민들이 차량시위를 벌였다. 공공비축쌀 45만t 격리 정책을 끌어냈으나 여전히 우리의 농업은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이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농촌과 농업을 살릴 방법은 없는 것인가. 벼논이 말라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게 현실의 농촌을 대변하는 상징처럼 여겨진다.

김윤관기자

 
비자리 둠벙
비자나무열매
태양광
해안의 자전거도로
마늘을 심는 어르신
장구섬
농가섬
석방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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