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39)보는 눈 듣는 눈
배정인의 에세이는 픽션을 입는다 (39)보는 눈 듣는 눈
  • 경남일보
  • 승인 2022.10.0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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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 이맘때면 노벨상이라는 것이 온 세계를 들썩거리게 하지요. 1970년대 김지하 시인이 노벨 문학상 후보로, 그것도 일본에서 추천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 나라에는 아무개가 상을 받을 거라고, 받아야 한다고 지난 몇 년 동안 어떤 글쟁이의 이름이 마치 떼놓은 당상처럼 단골로 회자 되었는데, 그때마다 압권이 되지 못하여 깃발을 올렸던 무리들이 김이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자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번역가를 양성해야 한다, 스웨덴에다가 홍보 센타를 내야 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을 만든다, 일본과 중국인들이 이미 받았으니 이젠 한국이 노벨 문학상을 받을 차례라고, 야단을 떨었지요. 그때 ‘뉴요커’라는 아메리카나에 있는 한 주간지에서 ‘거대한 정부 지원이 한국에 노벨상을 안겨줄까’라는 기사를 냈는데 어떤 한국 문학 에이전트가 ‘정작 책은 안 읽으면서 노벨상만 바라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책을 안 읽기로 소문난 나라가 한국이라는 거는 우리도 다 압니다. 알면서도 다른 나라 인간들이 은근히 비웃어대는 데도 그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으니, 이런 소인(小人)들의 태도를 보고 있는, 우리가 떠받드는 공자님은 속이 속이 아닐 것입니다.

아예 책을 안 읽는 사람, 책을 사다 재 놓기만 하고 읽지 않는 사람,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 중에 누가 많이 알까요? 답이 뻔한 이런 우스개가 있습니다. 재미나는 건 안 읽으면서도 아까운 돈 주고 책을 사다 재는 사람이 책을 안 사고 안 읽는 사람보다 재주도 늘고 훌륭도 하다는 겁니다. 똑같이 읽지 않는데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안 좋아하는 사람보다 훌륭한 인격을 가진다는 이 신비 때문에 옛 어른들이 어느 집 담 넘어 들려오는 아이들 책 읽는 소리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랫소리라고 칭송했지 싶습니다.

책은 크게 두 가닥으로 나눌 수 있지요. 돈을 벌 수 있는 것과 자기를 가꿀 수 있는 책이 그것인데, 유물이 유심을 깔아뭉개면 그 정신 사회는 아주 팍 썩어진다고 합니다. 유물의 핵심은 돈과 권력이지요. 돈이 사람보다 중요해지고 권력이 공동체의 정의 위에 군림하는 양두구육이 될 때, 세상은 지옥이 된다네요. 그래서 ‘형제와 금덩이’ 이야기도 있을 것입니다.

듕귁 청 때 사람 왕희손은 책은 읽어줘야 하고 (책이 타산의 돌과 같아도) 책 읽음은 타산지석(他山之石 可以巧玉)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읽는 나는 옥돌이고, 이 돌일뿐인 옥을 곱게 다듬는 데 필요한 도구가 책이라는 거지요. 배부른 돼지를 소크라테스로 만드는 작업이 책 읽기라니까, 타산의 돌도 고운 숫돌이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에세이·수필은 그냥 그대로 날 것인 타산의 돌이라 여깁니다. 별로 걸작도 명작도 아니고 그 지은이도 소문난 이름이 아니고. 금아 선생의 말을 빌린다면 ‘수필가 램은 언제나 찰스 램이면 되는 것이다’이지요. 인간을 사람 되게 하겠다는 글이사 쌔고 쌨지만, 세상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주고 대변해주고 상상의 공동체로 따땃하게 안아주는 글, 에세이·수필이 나를 사람 되게 함을 읽는 이는 알지요.

시월. 옛사람들은 등불을 가까이하는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남들은 노벨상 받는다고 야단인데, 이 가을에 소파에 빼딱하게 누워서 수필 한 편 읽어보노라면, 앙배야덕배야 정치 꼬라지 보는 나보다 내가 엄청 멋있어 보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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