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국가의 번영과 쇠락, 인재등용에 달렸다
[경일시론]국가의 번영과 쇠락, 인재등용에 달렸다
  • 경남일보
  • 승인 2022.09.2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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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진석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는 문공이 죽은 이후 어려운 시대를 이어갔다. 아들 양공은 아버지가 남긴 신하들의 보좌를 받아 그나마 괜찮은 정치를 펼쳤지만 손자 영공은 폭정을 휘두르다 신하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영공의 뒤는 숙부인 성공이 계승했는데 정사는 모두 실권자 조돈에게 위임한 채 무위도식했다. 성공의 아들 경공은 간신의 꾐에 빠져 공신의 가문을 몰살시켰고 초나라에 대패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경공의 아들 여공은 교만하여 사치가 심했고 신하들을 의심하여 대신들을 주살했다. 그는 결국 신하에 의해서 시해 당했다. 이처럼 역량이 부족한 임금들이 이어지자 진나라의 국력은 점점 쇠약해갔다. 국정은 혼란에 빠졌고 뜻있는 인재들은 다른 나라로 떠났다. 다시 천하를 재패하리라는 희망은 사라지는 듯했다. 바로 이때 기대하지 않았던 인물이 나타났다. 보위를 승계할 사람이 없어 겨우 찾아낸 종친 공손주다.

공손주는 자신을 영접하러온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과인은 타국을 떠도는 나그네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조차 가진 적이 없소. 그러니 어찌 감히 임금이 되길 바라겠소. 만약 임금이라는 이름만 받들면서 그의 명령에는 따르지 않는다면 차라리 임금이 없는 것만 못하오. 경들은 앞으로 과인의 명령을 기꺼이 따를 것인지 지금 바로 결정하시오. 그렇지 않겠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섬기기 바라오.”신하들은 놀라 머리를 조아리며 충성을 맹세했다. 공손주는 그렇게 왕위에 올랐는데, 이가 진나라를 번영으로 이끈 도공이다.

도공은 즉위하자마자 조정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국정을 농단한 간신들을 모두 제거했다. 폭정을 피해 은거해있던 명장 한궐을 총사령관에 임명하는 등 어진 신하를 높이 예우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대거 발탁했다. 이에 따라 순앵, 난염, 조무, 위강 등 훌륭한 인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될 수 있었다. 도공은 “자리를 비워두고 거기에 적합한 사람을 기다려야지, 사람을 위해 자리를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된다”고 했고, 적임자인지의 여부를 가장 중시하는 인사를 했다.

도공이 인재를 소중히 여기자 신하들도 본받았다. 기해라는 신하는 은퇴하면서 자신의 원수를 후임자로 천거하기까지 했다. 도공이 의아해서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주상께서는 신의 직위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으셨지, 신의 원수가 누군지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공평무사하게 적임자를 추천한다는 뜻의‘기해천수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비롯되었다. 도공은 신하들의 선의의 과오를 덮어주었고 상벌을 엄격히 시행하였으며, 세율을 낮추고 빈민구제에 힘썼다. 홀아비와 과부를 지원하는 복지정책도 시행했다. 더욱이 도공은 공명정대하고 잘못을 반성할 줄 알았으며, 인의(仁義)를 중시하여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감동시켜 움직이게 하였다. 이러한 도공의 통치아래 진나라는 다시 전성기 때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공은 스물아홉살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았다. 도공이 죽은 후 진나라는 수차례 국정문란을 격으면서 점점 쇠퇴의 길을 걸었고 한(漢), 위(魏), 조(趙) 세나라로 갈라졌다. 진나라가 몰락한 것은 도공의 시대에 비해 국력이 쇠퇴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도공의 앞시대나 뒷시대 모두 영토나 군사력, 인재풀은 충분했다. 다만 우수한 인재를 널리 발굴하려 하지 않았고,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않았으며, 인재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리더십도 부족했다. 군주 스스로 모범을 보이려 하지 않았으며, 원칙을 지키지도 않았고, 공명정대하게 행동하지도 않았다. 그 차이가 나라의 번영과 쇠락을 가른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정운영에 있어서 인재등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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