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당연이라는 폭력
[경일칼럼]당연이라는 폭력
  • 경남일보
  • 승인 2022.09.2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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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인준 (진주 당당한의원 대표원장)
어인준 

최근 제주행 비행기에서 아기가 울어 시끄럽다는 이유로 폭언을 하고, 승무원의 제지에도 소란을 피운 사람을 경찰이 입건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당사자는 한 방송을 통해 부모 둘 다 우는 아이를 달래지 않았고, 그중 아버지는 아이에게 뭐라 한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와 화가 났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두고, 소란을 통해 기내의 안전을 해친 것은 잘못이지만, ‘어른은 피해를 봐도 되느냐, 너같이 살까 봐 애를 안 낳았다’는 등의 발언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며, 개념 없는 부모들로 인한 피해사례 성토의 장이 펼쳐졌다.

그러면서 승객은 당연히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주장과 함께, 어른이라면 당연히 1시간 미만의 아이의 울음 정도는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오고 갔다. ‘당연하다’는 말은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하다는 의미로,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므로 추가적인 설명을 생략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상반되는 처지에서 당연하다고 말한다면 이미 그 상황은 당연한 결론이 나올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생명을 죽이는 행위는 당연히 나쁜 일인가? 거의 모든 뻐꾸기 새끼는 본인이 생존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다른 알과 새끼를 모두 떨어뜨려 죽인다. 상당수의 동물은 여러 이유로 열등하게 태어난 새끼를 제거하는 예도 있다. 이들의 행동은 옳은가, 그른가, 당연한가? 정당방위로 인해 살인을 하거나, 전쟁에서 적을 사살한 자는 옳은가, 그른가, 당연한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불가피하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알면서도 본인이 끼치는 피해는 당연하고 괜찮은 피해이고, 다른 사람이 주는 피해는 나쁜 피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이것을 알면서도 본인의 입지와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 당연하다는 말은 더 설명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겠다는 선언이자 폭력이 될 수 있다. 학생이니까 당연히 공부해라. 힘센 사람이 당연히 양보해라. 대기업은 당연히 세금을 많이 내라. 부모는 당연히 희생해라. 자식은 당연히 순종하라는 모든 말이 폭력일 수 있다. 당연한 것이 없다는 것은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과 같고, 그런 점에서 정치적인 올바름 역시 위선적인 표현이다. 정치적인 올바름은 없으며 정치적인 파워게임 또는 정치적인 가치관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폭력을 거부했듯이, 남성은 남성으로서의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폭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래세대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고령층의 부양 부담을 거부하고, 부유층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금의 누진 납부를 거부하며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일방적인 양보는 더이상 양보라 부를 수 없다는 명분으로, 비행기 난동 사건을 포함해 각종 문제 해결을 위한 경찰력 및 사법력의 투입과 개별문제를 통제할 제도 신설 등의 행정력 소모는 사회적인 비용을 증가시킨다.

분열된 사회는 당연함을 강조하는 반면, 통합된 사회는 감사함의 표현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절약한다. 남성이 여성의 희생에 감사하고, 여성이 남성의 희생에 감사함을 진심으로 표현하며 서로 도움의 손길을 준다면 불필요한 소모전을 피할 수 있다. 평소 기내에서 아이가 울지 않도록 대비를 했던 부모들에게 평소에 많은 승객이 감사함을 표현했거나, 부모가 아이가 울 때를 대비해서 주변 승객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혼자서 익명 댓글을 통해 모르는 타인을 평가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 상처받은 자존감을 채우는 유일한 길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주위의 이웃에게 그 감사함을 표현하고, 다시 감사함을 되돌려받았을 때, 비로소 삶의 무게를 이겨낼 자신감을 훨씬 강력하고 오랫동안 얻을 수 있다. 개인 차원의 평온을 넘어 우리 사회의 통합은 전쟁으로 달려가는 일촉즉발의 국제 정세를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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