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팔도 명물 총 집합시킨 고전소설 속 주안상
[경일춘추]팔도 명물 총 집합시킨 고전소설 속 주안상
  • 경남일보
  • 승인 2022.09.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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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경상우도 육군을 총지휘했던 진주성 병마절도영은 행정관청인 진주목아(牧衙)에 비해 다섯 배 정도나 규모가 컸다. 병마절도사 소속의 관속만 3000명이 넘었다. 병사의 행차는 장관이었다. “납신다!” 하면 100명의 취타수가 태평소와 나발을 불고 북과 징, 대포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200명의 기수군이 깃발을 들고 호위하며 삼반관속(지방 관아 소속의 하급 관리들)이 일제히 땅에 엎드려 절한다. 수령이 속현(고려·조선 초기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지방행정구역)을 둘러보는 순력(巡歷)이다.

이 순력이야말로 조선시대의 병폐 중 하나였다. 가는 곳마다 화포(火砲)를 터뜨려 백성들을 놀라게 했다. 음료와 술을 위주로하는 ‘다담상’의 음식 중 하나라도 간이 맞지 않거나 식은 것이 있으면 곤장을 쳤다. 다산 정약용은 순력 때 차려놓는 수령의 밥상 규모가 중국 황제의 밥상보다 열배나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흥부전’, ‘이춘풍전’ 등 조선시대 작자미상의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주안상에는 조선 팔도를 통틀어 최고의 안주들을 차려놓았다. 백성의 허기가 허구로 되살아난다. 순력을 통해 보고 들은 것들을 총 망라한 것이리라.

생률, 접은 준시(납작하게 눌러 말린 감), 은행, 대추, 청포도, 흑포도, 머루, 다래, 유자, 석류, 능금, 참외, 수박 등 계절이 각기 다른 과일이 십 수개가 올라있다. 술은 무려 열종이나 기록되어 있다. 이태백의 포도주며 도연명의 국화주, 안기생의 과하주, 석 달 열흘 백일주며, 소주, 황소주, 일년주, 계당주, 감홍로, 연엽주 등 작가의 욕망이 덧입혀졌다.

진안주로 오른 음식은 교방음식 그대로다. 생선찜, 생치연계찜, 홍합초, 전복초, 생선회에 겨자. 초장, 생청(벌집에서 그대로 떠낸 토종꿀)을 촘촘히 놓았다. 천엽과 간을 돌돌 말아 잣을 박은 갑회가 등장하는가 하면, 낙지연포탕에는 콩기름에 버무린 시금치로 고명을 올리고 각종 구이, 탕에 어포육포도 차린다. 갈비찜과 양지머리, 차돌박이도 부족해 전골까지 들인다.

얼마 전 한식진흥원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식선호도 조사에서 1위에 오른 것은 한국의 치킨이었다. 우리의 격조 높은 전통 음식들은 사라지고 길거리 음식이 한식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진주교방음식이 ‘고급 한식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물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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