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한일 간 음식 교류의 통로, 조선통신사
[경일춘추]한일 간 음식 교류의 통로, 조선통신사
  • 경남일보
  • 승인 2022.09.1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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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호왕호래(好往好來)잘 다녀오라. 늙은 왕은 사신들에게 네 글자가 적힌 편지를 건넸다. 임금은 다시금 목이 메고 치가 떨렸다. 150년 전, 감히 이릉(二陵·성종과 중종의 무덤)을 훼손한 저들을 어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나라를 위해서는 외교의 문을 열 수밖에 없었던 칠순의 영조임금.

조선통신사는 1428년부터 1811년까지 조선의 왕이 일본의 최고통치자인 막부(幕府·무사정권)의 쇼군(將軍·통치자)에게 보낸 외교사절이다.

일행이 한양을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하기 전, 통신사들이 지나는 고을은 떠들썩한 연회준비가 시작됐다. 이틀 사흘씩 기생과 음식, 물건과 돈을 바쳤다. 연회가 끝난 자리엔 사람과 음식이 난무하였다. 이렇게 큰 잔치는 이웃 고을들이 함께 치렀고 교자상마다 80기의 그릇이 올랐다. 연향이 파하면 다시 새 밥상을 들였다. 1763년 8월 통신사 김인겸이 기록한 <일동장유가>의 내용이다.

영남의 열 두 고을에서 지공(음식 따위를 대접하여 받듦)했다. 오백냥이나 되는 큰 돈이었다.

영천의 아전과 기생들이 일행을 맞았고, 창원에서 지공을 마치면 칠원(함안)이 기다렸다. 웅천(창원), 거창, 현풍, 곤양(사천)도 차례로 지공했다.

이날 연회에는 일곱 고을 수령들이 참석했다. 기장과 웅천, 현풍을 제외하면 거창부사, 곤양군수, 초계군수, 합천군수 등 진주목 수령들이었다. 경상도 기생 백 여 명과 서너 패의 악사들도 모였다. 통신사를 위한 연회상에는 갖은 실과를 넣은 만경떡과 부드러운 고기, 가는 회, 벙거지골(전골), 삶은 전복, 과일은 감과 배가 올랐다.

조선통신사는 문화와 예술로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메이지유신으로 막부가 무너지면서 일본은 더 이상 통신사를 요청하지 않았고 200년간의 우호관계도 막을 내린다.

통신사는 한일 간 음식교류의 통로였다. 쓰시마 섬의 고구마가 구황식품으로 조선에 전래되어 보릿고개 백성들을 살렸다. 19세기 궁중 조대비의 육순잔치에 왜 찬합이 올랐고 부산 왜관을 통해 들어온 ‘승기악탕’은 연회상의 으뜸이 되었다.

화합이 다시 외교의 화두가 되는 이때,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의 두부를 주제로 진주시와 일본 고치시(高知市) 간의 음식 교류 행사를 개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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