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래길을 가다 [11]말발굽길(5코스)
남해 바래길을 가다 [11]말발굽길(5코스)
  • 김윤관
  • 승인 2022.08.25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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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고향의 추억'
말발굽길은 남해 본섬을 떠나 남해에서 두 번째 큰 섬인 창선도 가장자리에 있다. 말발굽길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때 군사용 말을 사육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실제 중종실록, 진주목읍지 등 역사 서적에 창선면 적량 일대에 880마리 규모의 말 사육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코스에서는 만곡진 바다, 원형의 장포항을 따라 걷는 여유가 느껴지고 고즈넉한 추섬공원의 산책이 낭만적이다. 추섬은 과거 섬이었으나 방파제로 연결되면서 육지화 돼버렸다. 남파랑길과 바래길을 걷는 사람들이 오갈뿐이지만 지역에서는 나름대로 공원을 조성하고 산책로를 정비해 한번쯤 들러볼만한 곳이다.

아미산이라고도 부르는 남방봉 185m 중턱에는 보현사가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서면 멀리 말발굽길 기점인 적량마을의 빨간 등대와 해안이 눈에 들어온다.

창선면에는 말발굽길 외에도 고사리밭길코스 동대만길코스 3개코스가 지나간다. 창선면 인구는 5500명 수준으로 남해군의 면 지역 중 가장 많은 인구수를 자랑한다. 농촌을 떠나 도회지로 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곳은 인구 감소폭이 적다.

 
해안가 구도마을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
▲창선교 출발→지족해협→1박2일펜션→추섬공원→부윤마을→아미산 보현사→장포마을 장포항→대곡마을→적량마을
11.9㎞, 4시간 내외 소요. 난이도 ★★

 

▲바래길은 지족해협을 건너 창선도로 넘어간다. 지족을 가로지르는 창선교 위에서 바다에 세워진 죽방렴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 쏜살같이 내달리는 물살을 보노라면 어지럼증이 생긴다. 평소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는 이가 많은지 낚싯줄과 찌가 널브러져 있다.

창선교에는 과거 아픈 사연이 있다. 꼭 30년 전인 1992년 7월 30일 오후 5시 20분께 이 다리 교각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했다. 당시 사업비가 적어 시공사가 3차례나 바뀐 끝에 준공됐는데 완공 시부터 교각과 상판에 균열이 발생하는 등 날림공사 문제점이 지적됐다. 붕괴사고 후 3년 뒤인 1995년 12월 20일 기존 교량에서 남해 방향으로 50m 이동해 새 창선대교를 건설했다. 이와 비슷한 사고는 서울 성수대교 사고이다. 창선대교 붕괴 후 2년 뒤인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 성수대교가 무너져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이 사고로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쳤다.

창선대교를 건넌 후 지족마을 1박2일 펜션 앞을 지나 국도 동부대로에 다시 올라선다.

충만한교회에서 바래길 약 300m구간은 도로를 타고 가야 하는데 갓길이 50㎝남짓해 너무 좁아 통행이 자유롭지 않아 위험하다. 동행한 문부경 대장은 남해군이 이 구간에 대해 해안가 마을 쪽으로 우회해 정비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오름길 끝에 있는 창선건어물도소매장 앞을 지난다. 누구나 한번쯤 남해를 오갈 때 봤을 장소인데 노란참외 사과 배 복숭아 옥수수 등 계절과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판매한다.

이 고개를 넘어서 다시 국도를 벗어나 당저2리마을로 내려간다. 좌측은 당저1리마을, 정면 바다 쪽에 있는 섬이 추도, 바래길은 섬을 잇는 방파제를 따라 추도로 다가간다.

 
추도, 한때 섬이었으나 지금은 방파제를 쌓아 육지와 연결돼 있다. 추도공원이 조성돼 있다.


조선시대 거제와 남해도 해안 일대에서 특산물인 문어 미역 해삼 등 수산물을 모아 배에 싣고 서해안으로 북항해 경기도 인천연안, 한강을 거쳐 노량진으로 입항해 조정에 바쳤다. 해산물을 싣고 가던 돛단배가 풍랑을 만나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저사람들은 조공이 나랏님 께 무사히 도착하기를 빌면서 제를 올렸다. 제를 올리던 당집, 그 당집이 있는 산 아래 마을을 ‘당저’(당저 1리)라고 불렀다. ‘해창’은 조공을 바치기 위해 곡물을 쌓아두던 창고, 사람들은 그냥 해창마을이라고 불렀다. 이는 다시 당저2리로 바뀌었다.

바래길 취재팀 동행인 최○○씨의 어릴 적 고향이 당저였다고 한다. 마산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를 따라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뒤 남해군 창선면 당저로 이사 와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 6년간 살았다고 한다. 동네 형들이 섬이었던 추도까지 헤엄을 치고 오갔던 일, 마을에 운동장이 없어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 구릉에서 친구들과 공차기를 하며 놀았던 일, 추억이 꿈인 듯 아련하다고 했다. 고향을 떠난 뒤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다는 그는 변해버린 고향의 섬이 적잖이 생경한 듯했다.

해안을 따르면 구도마을이다. 부윤리의 자연마을 중 하나의 촌락이다. 현재는 분동돼 부윤2리라 하지만 주민들은 마을 앞 섬이름을 따라 구도마을이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임진란 전부터 토성과 굴항을 만들어 수병을 훈련시킨 곳이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 시 수산과 부윤으로 갈렸다. 부윤은 ‘부자로 윤택하게 살라’는 의미라고 한다.

어느새 높게 떠버린 태양이 강렬한 빛을 바다로 쏟아낸다. 아득한 바다 잔물결이 은빛처럼 빛나서 눈부시다. 수평선을 오가는 배들이 마치 은구슬이 구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봄날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은 착시현상이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은 이러한 광경에 ‘섬집아이’ 노랫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해안가를 따라가다 산으로 올라간다. 이때부터 바래길은 장포항까지 약 4㎞까지 산길이다. 둠벙이 발달한 벼논 들녘 너머 산 사면에 나무들 대신 태양광패널이 들어차 있다. 친환경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산의 상당부분 수목을 베어내고 태양광패널을 설치한 것이 환경을 보호하는 것인지, 자연을 훼손하는 일인지는 아직 논란이 많다. 다만 나무를 자르고 민둥산을 만든 뒤 구조물을 설치한 것은 미관상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미산 혹은 남방봉으로 들어서는 산은 해안가의 산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소나무 등 숲이 울창하다. 일조량이 많은 섬의 특성상 이 산도 언젠가 태양광패널로 덮히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긴다.

 
태양광패널과 둠벙

산신각을 두고 있는 산중 암자 보현사가 등장한다. 암자 앞 공터에서 보는 조망이 좋다. 적량마을과 바다가 어우러져 있다.

산을 내려와 닿는 곳은 장포항. 해안이 원형으로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해안 쪽 장군산에 ‘사우스 케이프’라는 골프장이 성업 중이다. 거북처럼 생긴 지형 위에 느대들, 해안에 모상개해수욕장이 명물인데 럭셔리 한 골프장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쉽지 않다고 한다.

장포항을 지나 대곡마을, 폐교된 학교는 진동초등학교이다. 지금은 ‘해울림’이라는 도농교류센터로 바뀌어 있다. 아담했던 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학교형태가 많이 변했다. 타 지역의 폐교는 대부분 방치되는 것과는 달리 그나마 남해지역은 폐교를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만들거나 청년들의 창업공간, 카페 등으로 탈바꿈한 것이 특징이다. 진동초등학교 터 교적비가 과거 초등학교였음을 알려줄 뿐이다. 73년 전인 1949년 12월 15일 개교 후 졸업생 1243명을 배출한 뒤 1994년 3월 폐교했다. 말발굽길 기점 적량해비치마을에는 보건소와 식당이 들어서 있고 해안에는 요트 계류장이다.

김윤관기자

 
적량마을 요트 계류장
죽방렴과 등대
죽방렴
갓길이 좁아 위험한 바래길. 남해군은 이 구간에 대해 우회길을 조성중이다.
구도마을 해안가
태양광 패널
도농교류센터 해울림, 진동초등학교가 폐교된 곳이다.
아미산 연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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