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소음피해 일방적 희생 강요 안된다
[현장칼럼]소음피해 일방적 희생 강요 안된다
  • 문병기
  • 승인 2022.08.0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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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양날의 검’이란 말이 있다. 하나의 사물에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는 뜻이다.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면 부정적 면은 묻히고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면 긍정적인 면이 묻히게 마련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양면성을 가진 일들이 숱하게 일어난다.


이같은 일이 사천에서 일어났다. 지난달 사천 공군 제3훈련비행단 활주로에서는 웅장하면서도 날렵한 외관을 가진 전투기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형 전투기사업으로 탄생한 ‘KF-21 보라매’로 첫 시험비행이 나선 것이다. 공군 전력의 현대화는 물론, 우리나라가 세계 8번 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 국가로 우뚝 서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자랑스러웠고, 감격했으며,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적 위상을 드높이는 일대 사건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해 할 때 뒤돌아 쓴웃음을 삼켜야 하는 이들도 있다. 초음속전투기 개발 국가란 위상 뒤에 묻혀버린 축동면과 사천읍 권역 주민들이다. 이들이 함께 웃을 수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은 평생을 항공기 소음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밤낮 없이 내뿜는 훈련기와 민항기의 소음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화를 할 때도, 티비를 볼 때도 목소리와 볼륨을 높인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가 앞장서 이들을 위로하고 대책을 마련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딱히 하소연 할 곳도 없다. 그저 나라를 위한 것이라 여기며, 참고 또 참으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F-21이 시험비행에 나섰다. 이 전투기는 현재 공군이 운용중인 KT-1이나 T-50같은 훈련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T-50은 단발 엔진임에도 비행 시 75~83웨클(WECPNL·항공소음단위)의 소음이 발생한다. 특히 이륙과 저공 비행 시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굉음’ 수준이다. 하물며 쌍발 엔진을 창작한 KF-21은 이 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란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첫 시험비행을 마친 KF-21은 4년간 1일 2~3회 꼴로 약 2200여 회 비행에 나선다. 최종 전투용적합 판정을 획득하면, KAI에서 2028년까지 120대를 양산해 우리 군에 납품하게 된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T-50 계열의 경공격기들이 유럽은 물론 세계로 수출 되듯, KF-21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럴 경우 시험비행뿐만 아니라, 향후 추가 생산에 따른 소음피해는 지속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경사지만, 주민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현행 항공법상 80웨클을 넘으면 소음 피해 예상지역이고, 90웨클을 넘으면 소음피해지역에 해당한다. 아직 KF-21에 대한 정확한 소음정도는 알려진 게 없지만 곧 밝혀질 것이다.

더 이상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선 안된다. 국가를 위한 일이라며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도 명분이 없다. 지금껏 소음피해에 시달려온 이들에게 과거에 대한 보상은 못하더라도, 앞으로 발생될 소음피해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최근 광주 군 공항 인근 주민 5만 7000여 명이 지난 2020년 11월 27일 시행된 ‘군소음보상법’에 따라 180억원의 보상금을 받은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자주국방과 초음속 전투기 개발 국가란 영광 뒤엔, 더 큰 고통을 감내하며 말 없이 살아가는 주민들의 어두운 삶이 감춰져 있다. 국가적 차원의 피해보상법이라도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그것만이 항공기 소음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이자 최소한의 도리이다.

문병기(서부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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