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월말 부부(홍혜향)
[주강홍의 경일시단] 월말 부부(홍혜향)
  • 경남일보
  • 승인 2022.07.3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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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한 판에서 한 알을 꺼내면

하루가 지워집니다

오늘 아침은 쌍란입니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날엔

프라이팬에 두 개의 달이 뜹니다

그와 한 달 만에 만나는 날이지요

빈 곳이 늘어날수록 만나는 날이 가까워집니다

잘못 집어든 달걀이 발치에 떨어져 깨지는 날도 있습니다

약속은 껍질이 얇아 잘 깨집니다

머릿속에 끈적끈적 엉겨 붙어 하던 일이 뒤죽박죽입니다

바깥인데 마네킹처럼 창고에 갇힙니다

엘리베이터는 가만히 멈춰 있고

서 있는 곳이 사막인지 초원인지 모릅니다

시월의 바람은 금방 헤어질 연인처럼 싸늘합니다

반숙의 아침이 늘어납니다

만남은 설익은 것에서 시작하니까요

비어 있는 곳에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믿음이 채워집니다

내일은 완숙의 만월이 뜰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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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의 계란을 한 알씩 꺼내며 하루를 셈하는 월말 부부의 애잔한 기다림이 재미있다.

간혹 약속은 얇은 껍데기처럼 깨어지기도 하고 더러는 생각이 엉겨 붙어 뒤죽박죽 힘들기도 하지만 믿음은 프라이팬 위의 쌍란처럼 다정한 그날의 모습이기를 더욱 기대한다.

비웠던 것들을 채우고 더 가까이서 가슴을 데우며 소유를 확인하고 싶은 그날이 내일이라면, 나란히 누워 등짝이 따끈거리는 그날이 내일이라면 프라이팬도 더 뜨겁게 달구어져 쌍달로 환할 것 같다.

사랑은 숭고하고 목숨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여간 다행한 일이다. 누구도 한때는 그런 사랑들이 있었다. 그래서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환하다.

주강홍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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