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음을 전시하는 곳
빛바랜 액자와 들풀, 먼지로 장정한 책들…
박제된 시간을 가로지르는 북촌의 전깃줄마저
오크 빛깔로 숨 쉬고 있네요
강신애 시인의 ‘그윽함에 바침’
시간이 깊이를 드러낸다면 ‘낡음’의 방식이겠다. 시간은 나아가는 속성을 지녔으므로 물리적이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멈춰선 물리적 요건들이다. 그것들은 사람의 기억 속에 살게 된다. 빛이 바래고 먼지가 쌓인 채로 정지해 있다. 낡아간다.
기억은 깊숙하여 아늑하고 고요하다. 이상한 것은, 시간은 낡아가는 데도 어떤 공간, 어떤 사물은 그대로 존재한다. 박제 상태가 된다. 그리움은 그쯤에서 생성된다. 시간의 깊은 곳에서 기억의 문법으로 모락모락 무궁해진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지점이다. 사물들이 저마다 그윽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때이다. 그윽하게.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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